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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Jun 08. 2024

learner

열심인 당신, 나의 스승입니다.

무언가 배움에 꾸준한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인다.

특히나 나이가 제법 있으신 분들이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마주할 때면 더욱 그렇다.

60이 넘으신 P는 색소폰에, 영어회화에, 아코디언까지 두루두루 섭렵한 음악에 있어서는 남다른 탤런트를 가지신 분이다.

연주도 수준급이라 매년 본인의 가족이 운영하는 산골 전원스튜디오의 음악회에 참여하여 멋진 공연을 할 정도이다.

그곳에 참가하는 분들이 거의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고 그 열정이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다.

음악회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만 감상했는데도 사람들 표정은 신명이 나있고 

몸 안에서 분출하는 내적 흥분이 임계점을 넘어 밖으로 용암처럼 분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장의 분위기는 열정적이었다.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그것을 삶에 그대로 녹여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짜릿한 광선이 내 심장을 관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지?' 한동안 정체기에 머물러 있는 듯한 나의 일상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P는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이른 시간 회사에서 색소폰 연습을 하는 아낌없는 노력을 퍼부은 탓에 짧은 기간에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한다. (한 시간 반 이 넘는 출퇴근길이 아까워 직장 근처로 이사까지 하였다.)

그렇게 직장가까이로 이사하고 이른 새벽 기상해서 A4용지 한 장 정도의 영어원서를 약 50-100번 낭독한다.

언젠가 내가 " 선생님은 영어가 왜 그렇게 좋으세요?" 했더니,

"딱히 이유는 없어" 하신다.

그러더니 덧붙이는 말이 '아들이 미국에 사는데 거기 놀러 가서 몇 마디라도 하면 좋을 것 같고'

사실 두 번째  답변은 그냥 하신 말이고 진짜는 첫 번째' 이유가 없는 것'이 라고 대답했던 말이구나 라는 조금 이상한 결론을 선생님의 표정에서 도출해 냈다.

그렇게 열심히 영어를 읽고 쓰고 말하고 하다 보면 '내가 뭐 하러 이렇게 힘들게 이걸 배우고 있지?' 생각이 들 때가 있단다.

공감한다. 나도 그럴 때가 종종 있다가 지금은 아예 3개월 정도를 완전히 영어에서 손을 뗐으니까.

한번 손을 벗어난 배움은 좀체 손아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나마 조금씩 누적되어 가던 실력은 그때쯤엔 이미 바닥으로 내려간 지 오래이기에 다시 첫 마음으로 다짐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마음은 계속해서 멀어지고 그러다 아예 마음 한편에서 그것을 지우려 애를 쓰게 된다.

그런 마음이 한동안 계속될 때 우연히 들은 P의 영어에 대한 열정은 저만치 사라진 의욕을 스멀스멀 불러일으키더니 강한 동기부여가 되어 내 심장을 세차게 뛰게 했다.

나는 처음에 영어가 좋아 회화를 배우다가 난도가 낮은 영화 한 편을 무자막으로 듣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그러다가 같이 미술수업을 듣는 외국인 학생에게 선생님의 말을 조금씩 전달해 주면서 영어에 대한 마음이 조금 커졌고 그 후에는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외국인 포스닥들을 상대하느라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막연하게 버킷리스트가 되어버린 언제가 될지 모르는 해외살이를 꿈꾸며 필연적인 마음으로 영어를 배우려 하고 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나도 그냥 영어가 좋아서이다.

그 마음이 서양인에 대한 더 정확하게는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고, 동경하는 나라의 뭐 하나라도 잘하고 싶은 부질없는 우월주의에 빠진 저렴한 사고에 버금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영어가 좋다.

그런들 어떤가, 이유가 어찌 되었던 그런 배우고자 하는 욕망 또는 간절함이 모여 나의 하루를 lead to something...으로 만든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하다.

배움에 있어 나이가 주는 불공평은 훨씬 많은 시간투자가 병행되어야 함이지만 그 열정만큼은 젊음이 들 못지않다고 자부하니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그 배움 자체를 즐기려는 마음의 자세를 장착했다면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준비운동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좋은 결과는 더 큰 계획을 품고 전진하는데 절대적인 동기부여를 해주겠지만 그 과정을 즐기고 욕심을 비운다면 물리적인 보답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욕심과 집착은 애쓴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그럴수록 채워지기는커녕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빗물처럼 어느 순간 흔적 없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잘해야겠다는, 성공해야겠다는 굳은 신념이 되려 육체와 정신을 긴장으로 감싸고 그 긴장감은 자연스러움을 흐트러뜨리고 불필요한 힘을 쓰게 된다.

나를 최대한 내려놓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생각 좋은 행동 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면 쓸데없는 힘을 빼고 어릴 적 간직했던 꿈인 -화가라기보다는 - 그림을 그리는 나의 모습을 소박하게나마 이루고 싶었다.

나는 그래서 가끔 나이 드신 분들과 꿈에 대한 얘기를 한다.

나이가 많다고 꿈이 없어진 것이 아니듯이 마음에 품은 꿈이 때로는 내 삶을 조용히 이끌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꿈 이란 커다란 빛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 - 설령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은 스스로 타오르는 나를 언젠 가는 빛나게 해 줄 강력한 나만의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즐겁게 배우는 사람들의 표정은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횃불이 되어 그 공간을 밝음과 희망으로 포위한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그 빛의 한가운데 서있는 기분이 되어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을 겪는 묘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들.

오늘 나는 그 사람들로 인해 떠밀어진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것이 나태한 내가 되어갈 때 억지로 등 떠밀려 마감시간이 정해진 할 일 앞에 서있는 기분일지라도 그렇게라도 나를 세우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들은 모두가 나에게 스승이다.

꿈으로 충만해진 나를 위해 오늘 조금 더 나를 비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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