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가 잘 사는 삶
캥거루 족 자녀를 둔 부모의 한숨이 커지는 요즘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객지에 나가있는 자녀의 생활비는 물론 기타 과외비용까지 책임을 지는 부모의 입장이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여의치 않을 때 부모와 나이 들어가는 자녀는 자연스럽게 한울타리에서 머문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녀를 부모가 책임지려 하는 속성이 우리에게는 남아있다.
그렇게 부모와 자녀가 함께 생활하면서 많이 참는 쪽은 당연히 부모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속에 있는 말을 털어내지 못해 속앓이를 하는 엄마의 말을 들어봤다.
'하루종일 공부하라고는 안 하지만 척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공부하는 아이가 핸드폰을 몇 시간씩 들여다보고 있다.'
'집에 있어도 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면 좋겠는데 밤 낮이 바뀌고 엉망이다.'
마음에 상처가 되고 기죽을까 봐 눈치 보고 참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취업을 위한 기간이 길어지니 독립하는 나이 또한 자꾸만 늦어지고 그러다 보니 결혼과 출산등 안정적인 가정을 갖게 되는 시기 도 언제가 될지 감도 잡을 수 없게 된다.
부모와 자녀 양쪽 모두 생활의 패턴이 파괴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답답한 현실은 더욱 더디게 흘러간다.
처음엔 조급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시간이 흐르면서 무뎌지고 익숙해지니 점 점 안주하게 되는 사람의 심리가 작용하고 내 집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다.
세탁기도 돌리고 설거지도 하라며 집안일을 시켰다는 지인은 그렇게 말하고 또 마음 한편이 속상해서 한동안 자녀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다고 한다.
청년들의 사회생활 지연은 심각한 저출산을 초래하고 이미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든 우리 사회는 노동력 부족에 따른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가 보다.
윤수용 작가의 '시선 너머의 지식'에서 이탈리아 편을 보며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아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성인이 되어서도 집을 떠나지 않는 청년들을 보며 진보정당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 청년 실업률, 낮은 임금 등 에서 기인한다는 의견을, 보수 정당은 청년세대의 나약함, 무책임, 자립의지의 부족으로 보았다고 한다.
실업률이 높은 이탈리아는 실업급여나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부담은 가족에게 전가되고 특히 그 책임은 여성에게 가중되어 있다고 한다.
그 결과 여성의 결혼기피, 저출산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고용시장의 불안감, 높은 실업률은 결혼 전까지 부모와 거주하는 긴밀한 가족구조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진정한 독립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부모집을 떠나 경제적인 자립을 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가 원하는 바를 알았다면 얼마만큼 그 길을 향해 나아가려 애쓰고 있는가?
실패에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나설 수 있는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는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겁내지 않고 나 자신을 추동하였는가?
그런 측면에서 나는 아직도 진정으로 독립하지 못한 주체가 확실하다.
플랜 1을 세우고 밀고 나갈 의지가 부족해서 자꾸만 플랜 2를 적당하다고 포장한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은 큰 불편함 없는 플랜 2를 계속 이어나가라고 종용한다.
그것을 나는 '나의 독립심 부족'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가족이었던 우리 집의 가족체계도 한몫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항상 보호받고 자랐던 나의 어린 시절 이 가족이란 구성원은 내게 있어 의존할 대상이라는 인식과 함께 피동적 삶을 추구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가족이 서로를 챙기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하지만 서로 지지하고 도와주어 스스로가 독립된 주체로 설 수 있게 했을 때 진정한 가족중심적인 뿌리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의 가치가 드러날 때 비로소 올바른 가족주의 가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