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집에 아무도 없다. 책상에는 엄마가 써놓고 가신 노란 포스트잍이 붙어있다. 조금 늦으신단다. 시계를 보니 벌써 6시 반.
아침에 먹던 반찬을 꺼내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수저를 들다가 문득 벽에 걸린 작은 액자에 눈길이 갔다. 외가식구들이 모두 모여 찍은 가족사진이다. 벌써 몇 년 전 사진이라 확실히 사촌동생들이 아직 어리다.
다들 깔끔하게 차려입은 데다가 표정도 밝아서 참 잘 나온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사진만 찍으면 어색한 표정을 짓는 남동생마저도 제대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날 같이 가지 못해서 사진 속에 나만 없다. 아쉽게도. 그 사진이 외할머니와 찍을 수 있는 마지막 가족사진이었다. 미소 짓고 계신 사진 속 모습이 참 곱다. 그리움과 함께 그때 기억이 어렴풋하게, 그러다가 점점 생생하게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2학년에 올라오면서였다. 그때 나는 뭐랄까, 모든 일에 의욕이 떨어졌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재밌었던 일들이 모두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몸도 괜히 피곤했다. 그런 상황이 성적에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공부하는 시간을 점점 늘려도 성적은 떨어져만 갔다.
그리고 내가 커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막연한 꿈은 있었지만 그마저도 지금 성적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절망스럽기만 했다. 그전까지는 올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이제는 벅차기만 했다. 그럼 그 꿈 말고도 내가 더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려 했지만 머리만 아팠다.
이러다가 공부해도 성적만 계속 떨어지고 대학도 아예 못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 왔지만 전부가 아닌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부모님은 성적이 떨어진 것에 대해서 혼을 조금 내긴 했지만 어차피 여자가 공부를 그렇게 잘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셨고 시집만 잘 가면 된다고 생각하셨다. 차라리 공부하라고 혼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이었다. 지금 공부를 제대로 해서 가고 싶은 과를 찾아가지 않으면 어영부영 있다가 부모님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정말 하고 싶은 일도 못하는 채로 살겠구나 싶었다. 이대로는 내 미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조하고 무기력했다.
지쳐가는 나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학교 내신과 모의고사까지 시험은 거의 매달 있었고 성적표가 나오면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그때마다 요새 공부를 안 하는 것이냐며 좀 열심히 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하긴 성적표에 찍힌 숫자들은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심하게 곤두박질친 점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아 그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못했지만 그 최악의 점수를 받은 날의 상황은 이러했다. 수학시험을 보는데 갑자기 몇 문제 풀다가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문제를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니고 문제가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심장만 빠르게 뛰고 시곗바늘이 가는 소리만 들렸다. 읽어도 뜻이 와닿지가 않는 느낌이고 나중에는 흰 종이 위에 있는 글씨는 그냥 까만 개미 같았다.
심호흡을 해보았지만 빨리 제대로 풀어야 된다는 걱정뿐 나아지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라 초조했고 당황했지만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 채로 시간이 지나갔고 종이 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 시험 때 긴장해서일까. 그 후로는 그 정도 사태는 없었지만 또 그럴까 봐 시험을 보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성적을 엉망으로 받고 나서는 3시간, 4시간만 자는 것을 지키면서 공부했지만 전체적으로 성적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선생님들의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말이 억울하기도 했지만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새벽마다 독서실에서 돌아오면서 어두워진 길 위에서 울었다. 이런 상황이 1학기 동안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