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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 Apr 07. 2024

적막 속 전화벨 소리

정말이지 그때의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안 하려고 해도 갖가지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져서 나를 힘들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충실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데 나만 뒤처지고 허우적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티 내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제대로 얘기를 했으면 나아졌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들과 있을 때는 일부러 더 밝게 웃어보려고도 하고 실없는 소리를 해보기도 했지만 그냥 그때뿐,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알 수 없었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좋은 생각만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우울함은 나를 잠식해가고 있었다. 나중에는 나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닫고는 몇 시간 동안 울었다. 누군가 나를 멈춰 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머리가 아팠다. 끝도 없는 어둠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별로 나아진 것 없이 여름방학이 되었다. 학교는 가지 않지만 특별할 것 없는 나날이었다. 단지, 무척 더웠다. 내 방은 특히 더워서 선풍기를 틀어도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왠지 독서실에 가기 싫어서 집에 와 있었다. 집에는 엄마와 나 둘 뿐이었다. 조용했던 분위기를 뚫고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평소처럼 그냥 엄마가 받겠지 하며 두었다. 그런데 왜인지 엄마가 전화를 받고서 말씀을 안 하시기에 거실로 나가보았다. 그냥 잘못 걸려온 전화이겠거니 했다.


다음 순간 엄마를 보고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울고 계셨다. 처음 본 그 모습에 나는 너무 놀랐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외할머니가 쓰러지셔서 대학병원으로 옮겼다고 했다. 그리고 상태가 안 좋아서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했다. 상황파악이 되자 나도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와 나는 당장 옷을 챙겨 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다른 외가 식구들이 와 있었다. 외할머니가 누워계신 모습을 보았다. 내가 아는 그 할머니 같지가 않았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아무 말 없이 누워있는 모습. 큰 목소리의 밝고 터프한 분이셨는데. 할머니 옆에 서 있는데 병원 특유의, 곳곳에 있는 하얀색이 나를 어지럽게 했다. 다행히 겉모습으로는 그냥 잠을 자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기대는 깨지고 말았다. 의사가 와서 이미 뇌사 상태라고 설명했다. 의학적으로 코마 상태이고 깨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절망했고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일단 가능성이 있다면 믿고 기다리기로 모두 다짐했다. 아니, 사실 다들 도저히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집에 계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고 할아버지가 발견했을 때는 119를 불렀지만 이미 늦었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정말 건강하셨고 아직 60대이셨다. 평균수명 100세를 바라본다는 시대인데. 그 활기참과 지혜로움에 우리 모두 의존하고 있었는데. 다들 할머니는 몸도 마음도 젊어서 오래 사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에 더 충격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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