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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 Apr 07. 2024

할머니의 부재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일단 할아버지를 모시고 댁으로 갔다. 우리 외가 식구들끼리는 아주 친해서 자주 만났고 집과 가까워 자주 놀러 갔었다. 그래서 외할머니댁은 항상 북적대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연상되는 곳이었다. 우리를 반기는 할머니의 미소와 조금은 과격할 정도의 포옹, 저녁 늦게까지 웃고 떠드는 식구들의 목소리가 가득한 곳.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 외할머니 없는 그 집은 너무 텅 비어 보였고 너무 조용했다. 할머니의 존재감을 새삼 깨달았다. 할머니가 방에 있다가 금방이라도 나와서 어서 오라며 반겨줄 것만 같았다.


외할아버지가 걱정되었다. 두 분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사이가 좋았고 외할아버지가 할머니께 많이 의존했던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정신없었던 그날, 나와 아빠만 집으로 왔다. 남아서 다들 밤새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하지만 슬픔도 잠시, 엄마, 이모, 외삼촌 모두 외할머니께서 깨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절대로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 번갈아가면서 병실에 문안을 가기로 하셨다. 코마상태여도 말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고 하기에 가서 매일 목소리라도 들려주면 빨리 깨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들 굉장했다. 엄마는 거의 매일 병문안을 갔다. 나는 학교 보충 수업, 학원 때문에 거의 가지 못했다. 하지만 사실 핑계다. 나는 가서 외할머니의 달라진 모습을 보는 것이 무서웠다.


엄마가 다녀오실 때마다 해주던 말씀을 들으면 외할머니는 이제 스스로 호흡이 어려워 기계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손, 발도 부어올랐다고 했다. 몇 주가 흐르고 할머니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다고 한 날, 이제 못 볼 수도 있다는 엄마의 말에 그때서야 같이 병원으로 향했다.


중환자실에 들어서면서 다른 환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옆에 가족들이 와 있기도 했고 의식이 있는 환자도 있었다. 각자 상태가 심각하니 그곳에 온 것이겠지만 그때 난 할머니의 의식이 있기만 해도 얼마나 좋을까 부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각각의 환자 가족들의 상황이 마음에 와닿았다. 얼마나 슬프고도 절실할지 그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침상 옆으로 갔다. 오랜만에 본 외할머니의 모습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얼굴도 몸도 부었고 피부색도 핏기 없이 창백해져서 알아보기 힘들었다. 머리에도 모자를 쓰고 있고. 가래가 자꾸 생기는데 혼자 제거할 능력이 없어 숨이 막힐 수도 있고 위험하다고 했다. 그래서 인공호흡기 말고도 가래를 제거하는 장치도 목에 하고 있었다.


병실은 조용했다. 호흡을 돕는 기계장치의 쌕쌕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엄마는 손녀딸 왔다며 할머니께 다정하게 말을 했다. 이모는 할머니의 손, 발을 주무르고 있었다. 엄마는 나도 한마디 하라고 했지만 울컥해서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정말 겨우 몇 마디밖에 못 했다. 할머니께서 평소에 친하게 지내셨던 분들도 문안을 와서 울고 가셨다.


매일 할머니 곁을 지키던 외할아버지가 “여보, 일어나야지.” 할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눈물이 쏟아지려 했지만 아직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애써 참았다. 우리 모두 그랬을 것이다. 돌아가신 것이 아니니 죽은 사람처럼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결의가 있었다. 혹시 의식은 잃었지만 뇌 활동은 해서 말을 들을 수는 있을까 봐 할머니 병실에서는 말을 조심했고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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