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러고 있는 동안 의사가 와서 할머니의 뇌를 찍은 사진 결과를 보여주었는데 뇌에 출혈이 심해서 살아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코마환자 가족들이 이렇게 계속 매일 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면서 놀랐다고 한다.
그래도 이제는 마음을 정리하시라고 했다. 우려하던 일이 사실이 되어 가는 느낌에 다들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이모는 할머니 손을 잡으며 저 말 듣지 말고 일어나시라고 했다. 나도 할머니가 다시 일어나시길 진심으로 바라며 매일 기도했다.
그날이 고비라고 했지만 무사히 넘긴 후 할머니는 오히려 상태가 좋아진 듯 보였다. 그때 모두 큰 고민 끝에 결국 인공호흡기를 떼기로 결정했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스스로 호흡을 잘하셨다. 가래도 약해졌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도 다들 어쩔 수 없이 희망이 생겼다.
이렇게 희망으로 고문당하는 기다림의 나날동안 나는 그동안 멀어졌던 엄마와 가까워진 것 같았다. 엄마를 위로하며 함께 울고 얘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는 내게 할머니의 물건을 정리해서 가져온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엄마가 유치원 학예회 때 춤을 추게 되어 입혔다는 한복이 인상적이었다. 반짝이 장식을 할머니께서 한 땀 한 땀 바느질했다고 하는 그 자그마한 한복을 할머니는 고이 간직하고 계셨던 것이다.
엄마 어릴 때 찍은 흑백사진들도 보았다. 처음 보는 사진들도 많았고 사진 속 할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은 참 미인이셨다. 사실 그전까지 나에게 엄마는 반항의 대상이었고 처음부터 어른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도 누군가의 사랑받는 딸이었고 여린 마음을 가진 ‘여자’라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내 위주로만 생각을 해 왔는지 깨달았다. 엄마가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서만 살고 있는 건 당연히 아니고 또 내가 그렇게 생각할 자격도 없었는데. 그리고 엄마가 엄마를 잃어 아파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 나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