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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 May 21. 2024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몸이 한 번 아파보니 힘이 없이 느껴질 때가 많아졌다. 초반에는 실제로 몸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것이었지만 통증이 좋아져 갈 때도 그랬으니 기운이 없는 주관적인 느낌이었을 것 같다. 건강 문제로 일상의 모습이 바뀐 것에 대해 적응해 갔지만 기분이 울적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점점 소소하지만 확실한 나만의 행복을 추구해보고 싶어졌다. 축축 쳐지는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진 출처: pixabay


첫 시작은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생각만 했던 것인데 일을 쉬는 동안 성인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지하철을 타고 1시간 이상 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행복했다.


어릴 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배워보는 피아노였다. ​처음에는 왼손도 어색하고 악보 보는 것도 많이 잊어버린 생초보였다. 쉬운 어린이용 악보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시 배우니까 어릴 때 배운 내용들이 조금씩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배우면 안 타다가 다시 타도 몸이 기억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점점 악보도 다시 읽게 되었고 양손으로 여러 곡을 배워갔다.


피아노 멜로디를 하나씩 쳐보는 것이 힐링이 되었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을 때라 취미를 만드는 기분에 더 좋았던 것 같다.


성인 전용 학원이다 보니 다들 취미 위주로 배우러 왔다. 대학생도 있고 취준생도 있고 직장인도 있었다. 영어 시험을 위해 어학원을 다닐 때 느낀 어떤 경쟁적인 분위기는 없었다. 한 번씩 로비에서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인사도 나누고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분위기였다. 나는 참여해보지 못했지만 수강생들이 곡을 연습해 연주하는 정기 연주회도 한 번씩 열렸다.

레슨 받는 시간 외에도 연습실이 개방되어서 레슨 없는 날에 들르기도 했다.​ 처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갔을 때 선생님이 배우고 싶은 곡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그때 에릭사티의 곡을 이야기했는데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었을 때 드디어 에릭사티의 곡을 두 개 배웠다.


큰맘 먹고 당근 거래로 전자키보드도 구입했다. 사실 레슨 받는 날 외에도 내가 집에서 연습을 할까 싶어서 망설였다. 그런데 집에서 쉴 때 부담 없이 연습 겸 쳐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완벽한 박자와 음이 완성되기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악보대로 음을 맞추는 것을 성공시키고 나면 그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부드럽게 치는 피아노부터 강하게 치는 포르테까지 강약 조절도 도전해 보자는 선생님의 권유로 같은 곡의 난이도가 확 올라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다가 그만둔 이유가 생각났다. 처음에는 내가 피아노를 좋아해서 부모님을 졸라 학원에 등록했다. 점점 실력이 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에 비해 손이 안 따라주니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당시 피아노 학원 선생님들은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을 한 번 마무리할 때마다 수첩에 사과 모양을 하나 색칠해 오라고 했다. 그렇게 10번씩 연습하는 것이다. 연습실 안에 앉아 잘 안 되는 것을 계속 혼자 연습하고 있는 것이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내 손가락이 짧아서 그런가, 내 박자 감각이 안 좋은가, 옆 방에 다른 아이들은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럴까. 자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배울 때는 달랐다. 어려워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피아노를 배우는 시간, 건반을 눌러보며 연습하는 시간만으로도 쉰다는 느낌이 들었다. 건반에서 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듣는 것과 악보대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감각이 그냥 좋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새삼 놀라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마음의 여유가 조금이나마 생긴 걸까 싶어서 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재밌는 시간. 이런 것이 건강한 취미 아닐까. 일상 속 힐링을 위해 나만의 취미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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