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어르신 중에 잘 지내시다가도 치매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가 있다. 걱정스럽기도 하고 진료를 보러 병원에 다시 다녀와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로 어르신들의 귀엽고 엉뚱한 언행이 나를 미소 짓게 만들기도 했다.
나를 비롯해 직원들을 귀여워해주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어느 날부터 치매 증상이 심해져서 옷장의 옷을 자꾸 다 꺼내서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시곤 했다.
"어르신, 왜 옷을 이렇게 다 꺼내놓으셨어요?" 하고 물으면,
"짐 싸야 해. 나 집에 김장하러 가야 해." 라고 하셨다.
매일 어르신의 옷 정리가 계속 되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결국에는 다시 정리를 해드리지만 다음날이면 또 옷을 다시 꺼내놓곤 하셨다. 치매가 있는 여자 어르신들 중에 옷장 속을 다 비우고 하루종일 옷 정리를 계속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도 나를 볼 때마다 뭔가 하나라도 챙겨주려고 하셨다. 가을이라 그런지 김장을 하는 것에 꽂힌 적도 있는데, 김장을 하고 나면 김치를 한 통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또 나를 돈 많이 주는 좋은 곳으로 취업을 시켜주겠다고 하시기도 했다.
"선생님. 내가 좋은 데로 보내줄게. 취업시켜줄게."
"아이고, 감사해요. 어르신, 그런데 저는 여기서 일하고 있어요. 저 맨날 나오잖아요, 그렇죠? 저는 어르신이랑 같이 있어야죠"
어르신은 그렇냐고 하며 그럼 동생은 직장을 다니냐고 물어보셨다. 동생의 취업도 걱정을(?) 해주시며 그럼 동생을 취업시켜주겠다고 하기도 했다.
어르신은 부쩍 다른 어르신들에게 관심이 많아지시기도 했다. 예전보다 이 방, 저 방 찾아다니다보니 많이 걸어다니는 것은 운동이 되고 좋을 것 같았다. 문제는 다른 어르신들의 물건에도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 이것 좀 주면 안 돼요?" 하고 물어보시면서 부채나 옷 등 다른 어르신들의 물건을 달라고 하시기도 했다. 몇몇 어르신들은 달라고 하니 순순히 물건을 내어주기도 하셨는데, 할머니는 그걸 또 다른 어르신들에게 나눠주셨다. 나중에 선생님들과 함께 물건들을 다시 원래 주인에게 돌려 주느라고 한바탕 조용한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자꾸 자기 물건을 달라고 하니 짜증이 난 어르신들도 계셨다. 그런데도 직접 화를 내지는 않고 뒤에서만 투덜투덜 대시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오늘도 우당탕탕 흘러가는 요양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