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를 훌쩍 넘긴 어르신 한 분이 계셨다. 조금 마르셨지만 정정한 편이셨다. 비록 청력이 좋지 않고, 걷기는 조금 힘들어서 기저귀의 도움은 필요했지만 팔 힘은 좋아서 스스로 식사도 잘하셨다. 자주 웃으시고 사람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직원들이 왔다 갔다 할 때면 말을 걸어주시며 생각나는 대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다. 치매는 최근 기억은 잊게 만들지만 옛날 기억은 오히려 뚜렷하게 만들어준다. 할머님은 옛날 친정집 이야기도 하시고 아주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다녔던 이야기도 들려주시곤 하셨다. 말씀도 은근히 잘하시다 보니 사실 다른 분들에 비하면 치매의 정도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할머님이 어느 날 병원에 입원했다가 요양원에 돌아온 후로 조금 달라지셨다. 병원에 입원했던 것이 힘드셨는지 조금 울적해 보이셨다. 어느 날은 이불을 머리까지 쓰고 울고 계시기도 했다. 왜 그러시는지 걱정되어 여쭤보니 하나씩 털어놓으셨다. 병원에 그 먼데까지 갔어야 했던 것이 섭섭하고 스스로 생각할 때 병은 없는 것 같다고 하셨다. 실제로도 뭔가 심각한 병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며칠 입원해서 잘 치료를 받고 오셨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퇴원을 하면 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돌아온 게 서운하신 모양이었다. 아주 명료하게 이어지는 문장들은 아니지만 그런 내용이었다.
할머님이 집에 갈 수는 없는 사정을 나도 다른 직원들도 알고 있었다. 가족들이 무심해서가 아니었다. 자녀들도 이미 노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대이고 본인들의 건강도 좋지 못했다. 집에서 누군가 할머님을 24시간 모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할머님이 이런 상황을 다 이해하시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어르신, 울지 마세요. 저희랑 잘 지내봐요” 하면 또 잠시 울음을 그치기도 했다. 고맙다고 하기도 하고 잠시 왜 눈물이 나냐며 웃기도 하셨지만 또 눈물을 보이셨다. 괜히 오래 살아서 자식들을 고생시키는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다.
요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 중 사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누가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냥 옆에서 들어드리며 달래드릴 뿐. 이런 날은 나도 마음이 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