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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시절

창신초등학교

by 언저리

내가 세상에 나온 장소가 서울 종로구 창신동 627-70이다

엄마는 나를 집에서 낳으셨고 이곳에서 중2 때까지 살았다

참 신기한 게 최근에 살던 집은 번지수도 모르고 아파트명 밖에 모르는데 태어난 곳 주소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학교 교가도 초등학교 교가 밖에 기억에 없다

"동으로 동으로 자꾸 가면 동해 바다가 보인다네

동대문 나서면 우리 학교 해님이 (앞장 선 우리 앞길)

창신 창신 우리 창신 잘 배우자 동무들아"


막상 쓰려니 가물가물 하다

나이는 못 속이나 보다 ㅠㅠ

나는 창신 초등학교 69회 졸업생이다 졸업기수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지금은 100회가 훨씬 넘었으니 정말 까마득한 예전이리라



1학년때 첫 남자 짝꿍은 아직도 이름이 기억

난다


' 김*선'


그 아인 내가 싫어 다른 만만해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짝꿍을 바꿔 달라며 으름장을 났더랬다

그때 나는 큰 상처였다

내가 다른 여자애들보다 통통했지만 그리 못나진

않았는데 내 인생 첫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던 때다


그런 아이가 나중에 날 졸졸 따라다니는 반전이 일어나는 일이 생겨 이 또한 미소를 짓게 한다


2학년 때부턴가 보다

내 인물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 왜 그리 생각하냐면 한 반에 80명이었는데 반장을

하려면 공부도 인물도 사는 정도도 어느 정도

레벨이 높아야 하는데 그런 애랑 내가 스캔들이

일어난 것이다

나랑 반장애랑 그렇고 그렇다고...

그림까지 그려져 돌아다니고 난 울고불고했지만

나름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애들이 나에게 시기 질투를 한 듯하다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ㅋㅋ)


3학년 땐 마지막으로 남녀 합반이었다

어릴 때부터 한 동네 살며 같이 놀기도 싸우기도 했던 ( 내손에 상대 남자애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었다) 남자아이 몇 명과 같은 반이었고 나랑 같은 번호인 남자애가 나를 귀찮게 했던 기억이 난다

(여자 1번, 남자 1번 이런 식으로 번호를 매김)


4학년 때부턴 남 녀가 분리되어 반이 정해지고 어느 날 선생님께서 교실바닥을 닦는다고 콩기름을 가져오라 했는데 난 그만 깜빡 잊고 말았다

선생님은 안 가져온 아이들을 나오라더니 자기 옷을 벗어 교실 바닥을 닦으라는 벌을 주셨다

난 좀 맹랑하기도 하고 정의에 불타는 편이라

어린 나는 선생님께 대들고 콩기름을 안 가져왔다고 옷으로 닦는 일은 너무 과하다고 따졌다

아이들은 나의 행동에 야유를 보내고 난 서글퍼

울었지만 결국 옷을 벗어 닦는 일은 없었다

그 후 담임선생님과 친해져 댁에도 놀러 갔더랬다


5학년때부터 6학년땐 걸스카웃을 하며 야외로

나가 활동도 하고 여러 선생님과도 잘 지냈는데

특히 6학년 때 신*희 선생님은 나를 너무 이뻐하셨고 칭찬도 많이 해 주셨던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선생님이셨다

몇 년 전에 서울시교육청에 전화해 찾아보기도 했고 알려준 학교로 통화하니 동명이인 선생님 이셨었다

국민학교 졸업 후 내가 중학교 때 결혼 하셨는데

육사출신인 분을 만나 결혼하신 것 같았다

결혼식에도 갔었는데 신랑분이 육사복을 입으셨던 것 같다

난 부부 잔을 결혼선물로 드렸었다


나름 찬란한 국민학교를 보냈던 것 같다

특히 내 이름이 특이해 나를 기억하는 동창과 선생님들이 많았었다

나보다 1살 많은 이웃집 소년은 내가 학교 가는 시간에 맞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툭하면 내 남동생을 찾아 우리 집에 드나들었었다


이 나이가 되니 옛 추억이 그립고 잊히는 것이

싫어 글로 남기고 싶어 진 것 같다

그리운 창신국민학교 내가 살 땐 창신동 성터 근처에 있던 냉면집 -지금은 깃대봉 냉면-도

그립다


서울출신에 갈 곳 없던 나는 겨울 방학 때는 동대문 운동장 안에 배구장 농구장을 얼려 스케이트장으로 이용했는데 입장료가 10원으로 기억된다

난 매일 스케이트를 타러 다녔고 그때 사 먹던 어묵은 정말 꿀맛이었다


내가 태어난 창신동과 다니던 창신초등학교가 새삼 그리워 다시 가봐야겠다

(최근 창신초교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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