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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라디오

by 언저리

참 이상한 일이다. 몸은 늙어갈수록 마음은 떠나가던데 기계는 나이가 들수록 정이 가니 말이다.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기계는 그때 당시의 시간 흐름대로 움직이니 더 마음이 가는 것일까.

첫 입주 때 라디오가 싱크대에 달려있다. 거의 28년 전 일이다.


그때만 해도 라디오가 싱크대와 한 몸이라는 게 어찌나 신기하든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라테는’이라며 지루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라디오를 들을 때의 기쁨이 30여 년 지난 지금까지도 은은하게 남아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됐나 보다.


지금이야 다양한 옵션으로 삶의 질이 높아지고 프라이버시도 지켜주는 첨단 시설 속에서 살고 있지만 , 30년 전에는 주방에서 일할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연을 들으며 울고 웃고 옛 팝송과 가요를 듣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보다 많이 부족한 시기여서, 단 한 가지만 더해져도 충분했다.


​꾸준히 나와 세월을 같이 걸어온 라디오는 몇 년 전 리모델링 공사에서도 살아남았다.


업체 사장님도 참 좋은 라디오라며 더 써도 되겠다고 했다.


그 말이 마치 나에게도 앞날이 넘치게 남았노라라고 들리는 듯했다.


시간을 같이 지내다 보면 내 영혼을 일부를 물건과 나누게 되나 보다.


​그런데 얼마 전 라디오가 고장이 났다.


소리도 지지직거리고 주파수도 잘 못 잡는다.


나의 노동요가, 수명을 다한 것 같았다.


‘다른 거 사지 뭐.’


그렇게 생각했지만 금세 입안에 쓴맛이 돌았다. 일상이 금이 가는 큰일이 아닌데도 마음 가장자리에 무거운 덫이 걸린 것 마냥 속이 묵직했다.


그래, 요즘은 다 핸드폰으로 하지 누가 라디오를 써. 아무렇지 않은 척 다독이며 핸드폰 앱을 다운로드하여 싱크대 옆에 두었다. 따라란- 익숙한 노래가 더 선명한 음색으로 흘러나온다.


근데 요것 봐라. 틀어 놓은 지 얼마나 됐다고 금방 배터리가 금방 닳는다


그 라디오는 몇 시간이고 끄떡없었는데! 낡았다며 욕한 라디오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남은 라디오 없나.’


참지 못하고 집안을 뒤졌다. 나이가 들었다고 아날로그가 끌리나. 뭐, 그런 건 상관없었다. 싱크대 라디오처럼 그냥 튼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하나를 보물처럼 발견했다! 오래전 샀던 휴대용 라디오였다.


주파수를 맞추고 건전지 A3를 끼우니 소리가 잘 들렸다. 신이 났다.


“이게 왜 이래?”


근데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새옹지마가 이렇게 짧은 순간에 여러 번 반복되어도 되냐만은, 이 라디오도 얼마 못 가 소리를 잃었다.


괜히 손으로 때려도 보고 안테나를 뽑아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여 봐도 소용없었다. 희망고문하듯 살짝살짝 소리만 낼뿐이었다.


라디오는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아휴, 뭘 어쩌겠어. 결국 또 핸드폰이지. 낡은 건 그냥 버릴 때가 되었어.


그리 생각했었다. 그러다 문득 입주 때부터 알고 지내 온 옆집 아저씨가 생각났다.


언젠가 망가진 선풍기를 들고나간 날, 아저씨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버린다고 하니 달라시며 그는 선풍기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고쳐 보겠다고 하시더니 하루도 안 돼 짜잔 하고 새것이 되어 돌아왔다


“이거 고쳐 주실 수 있을까요?”


안 되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고쳐 주시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한 번 그에게 꺼내 보였다. 그는 30년 동안 봐 온 익숙한 웃음으로 기꺼이 해주겠노라고 했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어쩌면 그냥 라디오를 고쳐 달라고 할 수 있는 좋은 이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던 것 같다. 어차피 라디오가 갖고 싶으면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치고 하나 사면 되니까.


똑똑-


아들이 초인종 소리를 좋아하지 않기에 문 앞에 노크만 해 달라는 푯말을 붙여놓았다.


저예요- 하는 익숙한 음성에 나가니 그의 손에 라디오가 들려 있었다.


돌아왔구나. 나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후 부엌으로 갔다. 그새 또 세월이 묻은 싱크대 위에 라디오를 놓고 전원을 켰다.


라디오는 답답함을 풀 듯 카랑카랑 소리를 냈다. ‘난 더 버틸 수 있었다니까!’ 하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 맞아. 나는 웃으며 라디오 음량을 키웠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나만의 무대에서 살랑살랑 몸을 흔든다.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어느 날. 이 라디오와 나는 함께 있다. 우리 같이 앞날을 더 즐겨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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