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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사초 Oct 22. 2023

홍시

당근마켓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오늘따라 구름이 참 낮게 떠 있다는 생각과 방심한 가을 햇살에 얼굴 그을릴까 모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섰다. 며칠 전 쓰지 않는 김치통 세 개를 당근에 올렸더니 바로 구입하겠다며 누군가 연락이 왔다. 바로 오지는 못하고, 주말에 시간을 내어 가겠다고 해서 약속을 잡은 것이다.


거래 물건이 김치통이라 으레 아주머니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머리가 희끗하신 어르신께서 나와 계셨다. 나를 보시더니 지긋한 연세에 걸맞지 않게 수줍은 손을 드시며, '혹~시 당근?' 하셨다. 그 어색한 조합에 살짝 웃음이 새어 나오려 했는데, 어르신께서 먼저 멋쩍으셨는지 묻지도 않은 말을 던지셨다. '아이고~ 자슥들한테 김칫통 보내믄 통이 돌아올 줄 모린대이'. 그 말씀 속 '자슥'이 나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고 얼굴이 붉어졌다.


차 트렁크에 김칫통을 실어드렸더니 조수석에서 홍시 한 상자를 꺼내셨다. 감 농사 하는데, 몇 개 맛보라고 가져왔다며 건네시는데, 그냥 봐도 그 양이 맛보기 정도가 아니었다. 가을 햇살에 발갛게 익은 홍시가 어르신의 넉넉한 마음까지 잔뜩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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