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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사초 Jul 16. 2024

모퉁이를 접다

다시 브런치를 시작하며


책의 '모퉁이'를 접는 습관이 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발견했을 때,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거나 작가와는 다른 생각을 메모하고 싶을 때, '모퉁이'를 접는다. 내가 '모퉁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 '귀'를 떠올린 시인이 있다. 시인 박일환은 자신의 시 '귀를 접다'(청색종이)에서 '책을 읽다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으면 /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 왼쪽 귀를 조금 접어둔다 // (중략) // 책을 읽다 귀를 접는 건 / 읽는 힘이 쓰는 힘을 불러오기 때문이겠다'라고 표현했다.


귀를 접건, 모퉁이를 접건, 중요한 것은 접는 행위다. 책의 '모퉁이'를 접는다는 건 단순한 글자의 나열을 넘어 그것들이 엮어내는 의미에 집중했다는 뜻이다. 나아가 작가가 만들어낸 그 의미가 적어도 나에겐 기억하고 싶을 만큼, 혹은 ‘모퉁이’를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유의미하게 와닿았던 것이고, 시인 박일환에겐 쓰고 싶은 충동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미리 흘려둔 조약돌(빵조각)을 따라 집으로 돌아온 헨젤과 그레텔처럼 나는 접어둔 '모퉁이'를 따라 책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작가의 말에 공감하거나 맞장구를 치고, 대립된 의견으로 살벌한 토론을 벌인다. 그런 과정에서 '모퉁이'는 내가 가진 생각의 오류를 허문다. 내 생각의 토대를 고쳐 다시 쌓기도 하고, 그동안 쌓은 것을 공고히 다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제까지 내가 접은 '모퉁이'들이 내 인식과 사유의 틀을 엮어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래서 '모퉁이'가 많이 접힌 책은 늘 손 닿는 곳에 있다.




책의 '모퉁이'를 접는 것처럼, 이제는 하루의 '모퉁이'를 접어볼 생각이다. 쳇바퀴처럼 반복된 일상은 종종 삶의 의미를 잊게 하고, 권태를 야기한다. 그런 반복 속에서 하루의 '모퉁이'를 접는 행위는 사소한 일상 속에 숨겨진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다. 또한 무지 간에 엄습해 오는 권태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지극히 평범할 수도 있는 일상이지만, 평소와는 다른 높이에서, 조금 더 낮은 자세로 바라보려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접어 둔 '모퉁이'를 헨젤과 그레텔의 빵조각처럼 여기 브런치에 흘려둔다면, 나는 그 빵조각을 따라 매번 내 글쓰기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빵조각을 주은 그 누군가도 자신의 ‘모퉁이’를 한 번쯤 접어보려 하지 않을까, 아니면 자신의 일상이나 생각을 남기기 위해 또 다른 글의 집을 찾지 않을까 혼자 동화 같은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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