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반점에서 자장면이나 짬뽕을 시켜 먹을 때, 또는 집에서 만들어 먹기 쉽지 않은 찜닭이나 코다리가 먹고 싶을 때, 나는 락앤락 그릇이나 큰 냄비를 챙겨간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한 건 아니다. 한 번 먹어보고 계속 주문해 먹을 만한 맛집이란 생각이 들면, 다음번 방문 때 사장님께 조심스레 여쭤본다. 포장해가고 싶은데, 그릇이나 냄비를 가져와도 되냐고. 종업원의 입장에선 업무의 다른 옵션이 생겨 번거로운 일이지만, 사장님의 입장에선 당장의 비용이 절감되는 일이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들 흔쾌히 허락하신다.
남다른 말과 행동 탓에 어떤 사장님은 주방에서 나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려 하고, 어떤 종업원은 매번 귀찮지 않냐며 묻기도 한다. 스마트폰의 배달 앱을 이용하면 문 앞까지 음식을 가져다주는 세상인데, 그릇을 들고 찾아가 음식을 기다린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겐 분명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이런 행동이 귀찮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새로운 맛집을 알 때마다 일일이 사정을 말씀드리고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주문할 때마다 그릇을 가져간다는 말을 잊어서도 안된다. 음식 나오기 5분 전까지 그릇을 들고 미리 가게에 가 있어야 한다. 어떤 가게는 그릇을 가지고 가야만 주문을 받아준다. 주차가 쉬운 가게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인근에 주차가 어려운 곳이면 한여름 땡볕에 양손으로 냄비를 받쳐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내 모습이 난처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릇을 가져가는 건 그 불편함과 귀찮음을 감내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위한다는 거창한 구호까지 떠올린 것은 아니다. 다만 며칠만 지나면 쓰레기통을 가득 채우는 플라스틱 포장재들이 싫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플라스틱을 아무 생각 없이 매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걱정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 집만큼이라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 봐야겠다는 소소한 신념이 발동한 것이다. 그런 소신을 가지고 나니 내가 하는 행동이 생각만큼 귀찮거나 번거롭지 않았다. 오히려 소신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행동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듯하지만, 가끔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릇을 가져가는 일이 반복되면서 의도치 않게 사장님의 비용을 줄여주는 착한(?) 단골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곱빼기 같은 보통이나 2인분 같은 곱빼기가 종종 나온다. 시키지도 않은 음료수가 따라오기도 한다. 배를 채우는 물질적 보상도 고맙지만, 더 값진 건 소신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인식 변화다. 매번 그릇을 챙겨 오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닌데, 정말 대단하다며 볼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그러면서 어떤 사장님은 나처럼 포장용기를 가져오는 고객에게 음식 가격을 조금이라도 깎아줘야겠다고 말씀하신다. 또 그릇을 챙겨 오는 내 모습을 본 일부 고객은 자기도 그릇을 가져와야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기분 좋은 말이고, 고마운 말이다. 안될 것 없다. 내가 이미 실천하는 일이고, 개인 텀블러를 가져오면 음료의 가격을 깎아주는 카페까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신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과 마주할 때가 적지 않다. 대형마트에서 물을 주문할 때, 동네 마트에서 조금만 장을 봐도 딸려오는 플라스틱 또는 스티로폼 소포장은 정말 소신만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다. 매번 재활용품 수거함을 가득 채우는 주범(?)인 생수통을 보면 물을 이렇게 사 먹는 것이 맞는 일인지 의문이 든다. 식재료 포장을 위한 스티로폼 소포장도 상품 판매와 구입 고객을 위한 것임을 이해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환경을 위해 지속가능한 것인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의 대형 마트에서 식재료를 담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종이봉투를 우리 마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편한 방식을 추구하는 시대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 행동일지라도, 그릇을 가져가는 행위는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선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에게 선한 행동이고, 음식점 사장님께 선한 행동이다. 또 다른 소비자의 인식과 행동 변화에 선한 행동이며,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구에 선한 행동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당한 목소리로 주문하고 바쁘게 뛰어나간다.
“사장님, 그릇 가져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