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괴물(2006)

by 리뷰


비 오는 토요일 오후, 10년 전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 아이와 함께 다시 보았다.


뭔가를 또다시 경험하게 된다는 건, 그 경험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에 영화를 유심히 보았다.


당대 한국 사회와 한미 관계, 국가 언론 과학의 권위에 대한 불신을 한꺼번에 비틀어서 사회를 풍자하려고 한 감독의 의도가 보이는 가족 영화였다.


오염(권력과 무책임)이 낳은 괴물에 맞서, 망가진 제도 대신에 보통 가족의 연대가 끝까지 저항하는 스토리다. 한미 동맹의 그늘, 정부의 무능, 공포를 키우는 언론과 전문가 권위를 풍자한다. 그러면서도 장르의 쾌감과 눈물의 가족서사를 동시에 묘사하고 있다.


감독은 무엇을 말하려 했나 — 7가지 메시지


미군과 국가 권력의 무책임이 부른 재난

영화의 발단은 실제 2000년 용산 미군기지의 포르말린(포름알데히드) 방류 사건을 변주한 오프닝이다. 감독은 실제 사건을 참고했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이라크 WMD를 연상시키는 가짜 권위 풍자

미군이 주장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와 살포되는 화학제 Agent Yellow는, 존재하지 않는 대량살상무기(WMD) 소동과 베트남전 Agent Orange를 비튼 장치라고 봉준호 감독이 직접 설명했다. 반미 영화로 단순화한 건 과장이었지만, 미국을 향한 은유와 정치적 논평은 의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관료주의와 방역 통제의 블랙코미디

정부 전문가 의료 방역시스템은 실체 없는 공포에 매달려 엉뚱한 격리와 통제를 반복하고 책임은 서로에게 떠넘긴다. 감독은 이런 요소들이 한국 사회 전반을 향한 풍자라고 인터뷰에서 분명히 얘기했다.


언론과 유사 과학이 증폭하는 공포

소문 오보 전문가담론이 얽혀 공포가 커지고 재난 대응은 쇼가 되었다. 이 대목은 정보 오염의 메커니즘에 대해 경각심을 느끼게 했다.


국가가 못하는 걸 민이 한다

국가는 구하지 못한 아이를 가족이 사적인 연대로 쫓고 또 쫓는다. 봉준호 감독이 즐겨 말하는 장르 괴수 코미디 멜로가 잘 드러나 있다. 평범한 서민 가족의 작고 찌질한 싸움을 일부러 돋보이게 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묻고 있는 듯하다.


한강 오염

영화 괴물의 괴물은 한강의 오염이 빚은 도시 문명의 찌꺼기다. 다리 난간을 타고 흔들리는 괴수 이미지 자체가 도시가 외면한 강의 배반을 시각화하고 있다.


장르적 쾌감과 정치의 공존

「고질라」 「조스」 계보의 괴수 스펙터클을 빌리되 한국 2000년대의 정치사회적 맥락(이라크 전, 촛불 시위 문화, 환경 부패 이슈)을 장르 안으로 끌어와 웃프게 비틀어낸 점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장면과 모티프로 보는 해석 포인트


독극물 배출

이 영화는 사건(용산 기지 방류)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영화 처음에, 괴물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무지한 권력의 산물인 인재임을 밝히고 있다.


바이러스와 사회적 격리

실체 없는 위험 관리가 더 큰 피해를 낳는다는 풍자를 하고 있다. 10년 뒤에 벌어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복선 같은 느낌도 든다.


에이전트 옐로 살포 장면

권력의 잘못을 덮기 위해, 없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 죽음의 가스를 대한민국의 심장인 한강변에 살포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지성과 권력의 힘보다 더 강력한 것은 기본적인 인성의 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힘은 그 어떤 물리적인 힘보다 강력하고 인류를 지탱할 유일한 힘임을 깨닫는다.



양궁 선수 남주의

능숙한 영웅 대신 망설이고 실패하는 완벽하지 않은 보통 사람의 현실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끝내 해낸다. 봉준호식 히어로 스토리.


엔딩의 식사와 발로 하는 TV 음소거

이제는 아무도 오지 않는 황량하고 눈 덮인 얼어붙은 한강의 매점 컨테이너 박스 안. 여전히 괴물의 급습에 촉을 세우고 있다. 그럼에도 매점 안은 가족의 온기로 가득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딸이 마지막 순간까지 품에 품고 간절히 지켜냈던 아이. 그 아이가 살아서 딸이 있던 자리에서 딸이 받았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곤히 잠들어 있다.


두 사람은 TV 소음을 끄고 서로 마주 보고 함께 따뜻한 식사를 맛있게 한다. 밖에는 여전히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국가가 아닌 오직 가족만이 스스로를 지킬 가장 안전한 안전지대이자 그 무엇도 엄습할 수 없는 마지막 보루라는 고독한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는 듯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굳게 지키는 것은 서민 스스로일 것이라는 웃픈 스토리.


일개 평범하고 모자란 한 시민이지만
그 어떤 거대 권력이나 지식인보다도
훨씬 더 인간적이고 도의적이라는 걸
이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듯하다.





반(反) 미영화인가?


봉준호 감독은 그렇게 단순화하긴 어렵다고 부인하면서도, 미군과 국가 권력을 향한 은유 정치적 논평은 분명히 의도했다고 밝혔다. 반미라기보다는 권력의 오만과 시스템의 무능에 대한 국제정치적 풍자에 가깝다.


당대 한국 관객이 읽어낸 시대성


영화는 개봉(2006.7.27) 즉시 흥행 기록을 세웠고, 최종 1,3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가족의 사적인 연대와 권력풍자라는 메시지를 동시대 관객과 강하게 공유했다.




영화 「괴물」은 미군 정부 전문가 권위가 저지른 오만과 환경 파괴가 낳은 인재를 보통 가족의 연대로 돌파하는 이야기다. 봉준호 감독은 괴수 스펙터클을 통해 한미 관계의 비대칭, 이라크전 WMD 담론, 통제와 공포의 정치, 언론과 유사 과학의 증폭을 동시에 풍자했고, 그 모든 비판을 가족의 생존드라마에 매칭시켜 끝까지 인간적인 감정선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이 영화의 본질은 괴물이 아니라 인간(가족)과 권력(시스템) 사이의 비극적 간극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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