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은 완벽한 철학의 영역이었다.

양자적인 사고

이순칠 박사님의 '퀀텀의 시대'를 읽고 있다. 책은 퀀텀의 시대를 과거 미래 현재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과거 부분을 읽으며 그동안 궁금했던 어떤 부분들이 묘하게 이해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 대화를 나눌수도 없었고 질문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물리와 과학의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물리학이나 과학을 전공한 박사님들이 계신데 그분들은 과학을 오래전 과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공식과 계산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게다가 철학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는 분위기다.


'왜? 그럼 어떻게 한 발을 나가지? 나는 과학과 물리의 문외한이지만, 과학 특히 물리학은 분명 철학적인 영역인 것 같은데..'


이 책에서 이 부분을 분명히 다루고 있었다. 과학자들의 연구비는 국민의 세금인데 정부에서 철학적 호기심을 파헤치라고 지원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에 보여지는 결과물이 나올 프로젝트에만 지원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교과서도 학생들이 딴 생각하지 못하게 계산 위주로 어렵게 구성해서 공식을 대입해 계산을 하도록 가르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말은 오래전부터 과학자들 사이에서 있던 말이다. 하지만 이런 충고를 듣지 않고 철학적 문제를 열심히 파고든 존 스튜어트 벨은 형이상학적으로 떠돌던 논쟁을 종식시킬 벨 부등식을 만들어냈다. 2022년에 용감한 알랭 아스페는 그런 벨의 연구를 이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빅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우주 안 삼라만상은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고 완전히 독립적인 것은 없다. 이것이 양자의 기본 개념이다.


이세상 모든 상황은 양자얽힘으로 인해 이유가 있어서 벌어지는 것일테니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세상은 순리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이것이 평범한 사람인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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