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일깨워 주는 어린 아들


나는 82년생 김지영이 아닌 72년생 김윤희다. 평범한 대한민국 중년 여성이다. 어느덧 지천명이 되었다. 멋지고 당당한 어른으로서 지천명 반열에 올랐으면 참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기도 히고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꿈을 꾸고 있다. 지금 입장에서는 막연하기도 하고 거창하기도 한 꿈이지만 누군가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줄 지혜의 말 한마디 건낼 수 있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


이런 어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른으로서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턱 하니 힘이 되어 줄 수 있고, 등을 토닥여 달라고 등을 내미는 젊은이들 있었으면 좋겠고, 저를 찾아와 눈물 흘리며 마음 속에 쌓인 아픔을 털어냈을 때 저도 모르게 지혜가 툭 튀어나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명쾌한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고, 옳고 그름을 바르게 분별할 줄 알아서 따끔한 쓴소리 한마디 해줄 수 있는, 사회에 꼭 필요한 그런 진짜 어른이 언젠가는 되고 싶습니다.






저는 40살이 넘어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결혼을 했습니다. 긴 터널을 지난 것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지천명이 된 지금에서야 제가 얼마나 세상을 몰랐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세상을 경이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젊은 시절 경제적 기반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어서, 그로인해 가장 피해를 본,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람은 바로 저희 아이입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 : 그러고 보니, 요즘은 아파트로 이사 가자는 말을 통 안 하네?

아이 : 아파트로 가고 싶지만, 그러면 거기 살고 있던 사람이 나가야 우리가 들어갈 수 있잖아요. 우리가 아파트 들어 가려고 살던 사람을 나가라고 쫓아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랬어요.

저 : 뭐? 아..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했구나.. 엄마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네..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부모로서, 아이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든 것에 대해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그때 다짐헸습니다.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저의 실력이 부족해서 당장 어떤 결과가 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위해서 차근차근 제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야겠다고.






또 언젠가는 달리기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단거리 달리기가 제법 빠른 편이어서, 학교에서 달리기를 하게 되면 선수로 나가곤 했는데, 그날은 뜻밖의 얘기를 하더라구요.


아들 : 엄마, 이번에 학교 대항으로 종합 운동장에서 달리기 대회가 있대요. 친구들이 저를 추천해 주었는데 제가 안 한다고 했어요.
저 : 왜? 너 달리기 하는 거 좋아하잖아. 이기는 것도 좋아하잖아.
아들 : 근데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제가 어릴 때는 승부욕이 활활 타올랐잖아요. 엄마도 아시죠?
저 : 그럼 알지, 승부욕이 엄청났지.
아들 : 근데 요즘은요, 집에서 아빠 엄마랑 보드게임 할 때는 아직도 승부욕이 활활 타오르는데, 학교에서 친구들과 경쟁을 해야 할 때는 승부욕이 활활 타오르지 않아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친구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아서예요. 친구들이 경쟁하는 걸 많이 봤는데, 이기는 친구는 너무 좋아하는데, 지는 친구는 울기도 하고 많이 속상해 하더라고요. 또 선수로 나갔을 때 지기라도 하면, 반 친구들이 많이 서운해 해서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친구들과 응원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결정한 거예요.



저도 미처 생각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남을 위하는 마음. 친구들을 위하는 마음. 자라나는 환경이 부유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부모인 저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볼 줄 아는 속 깊은 아이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주변을 보면 저처럼 40대에 결혼해서 노산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모님들이 생각보다 많으십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노산인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는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구요.


또 아이에게서 엄마인 저의 모순들이 거울처럼 비춰져서 눈물을 흘리며 제 자신을 반성해야 하는 시간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교차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았던지.


아이를 통해서, 아이를 위해서, 부모인 제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독려해 나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부모보다 유전적으로 한 단계 더 진화되어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어떤 면에서는 부모보다 훨씬 영리하고 똑똑한 것 같습니다.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철이 들어가는 저의 경우를 보면서, 아이가 저의 귀한 은인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이는 이유가 있어서 저희에게 왔을 것이고, 아이 덕분에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제 자신을 생각해 볼 때, 이 전체가 통으로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세상 전체가 행복해져서 세상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by 에센랩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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