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린 시절 청개구리 심보를 내면서 요란스럽게 보냈습니다. 저의 청개구리 심보를 생각해보면 브모님에 대한 반항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반항했던 이유는 잔소리와 간섭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되어서 였습니다. 잔소리는 대부분의 집안에서 흔히 벌어지는 평범한 일상인데, 어떤 아이들은 잔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자라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잔소리를 들어도 한 귀로 흘려 버리고 별로 게의치 않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들은 얘기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이 얘기에서 반항심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얘기였나면요..
저는 중간 책임자입니다.
제 아래 직원 하나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켜서 부서 전체에 문제가 되고 있었고, 그 책임은 직계 상사인 제에게 돌아왔습니다.
실수 없이 잘 살펴서 하라고 아무리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바로 잡아지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직속 상사가 다른 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온 상사가 제가 아래 직원에게 한 것과 똑같이 저에게 잔소리를 끊임없이 했습니다.
너무 신기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잘한다고 했는데 상사는 매번 아니라고 인상을 쓰니 또다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의논을 해보고, 머리를 최대한 굴리고, 평소보다 배로 신경 써서 일을 했지만, 상사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상사에게 반항심도 들고, 동료들과의 모임에서 상사 험담도 하면서 쌓여만 가는 감정을 풀었습니다. 참 못난 모습이었죠.
하지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요.
도저히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어느 날 저는 용감하게 상사를 찾아갔고, 저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문제가 되고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는지를 아주 자세하게 여쭤 보았고, 그동안의 저의 심경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상사가 불같이 화를 내실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환하게 웃으면서 저의 질문에 대해 제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세히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상사의 그런 태도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업무에 대해 그동안 제가 맥을 잘못 잡고 있었다는 것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순간 상사에 대한 분노가 사라짐은 물론 업무에 대한 자신감과 회사에 대한 감사함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자리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제 아래 직원도 일부러 일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저처럼 업무에 대한 맥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바로 아래 직원을 불러서, 솔직한 얘기를 듣고 잘 이해되도록 찬찬히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서에는 수시로 업무에 대한 진솔한 소통을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희 팀은 아무런 문제 없이 손발이 척척 맞게 돌아갔고, 팀워크도 너무 좋습니다.
그때 상사의 리더십 덕분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윗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청개구리 심보나 반항심이 생기는 이유도 이란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사람이 말을 해줘도 아랫사람이 그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럼에도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당연히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하지만 아랫사람은 왜 그래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움직일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되면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자꾸 다그치게 되고 간섭을 하게 되니, 로봇이 아닌 이상 강한 반발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개구리 심보는 보통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현상입니다. 이때는 보호자가 있거나 이끌어주는 선생님이나 사회 멘토가 있는 나이입니다.
자신을 이끌어주는 윗사람이 어떤 분인가에 따라 젊은이들의 방황과 반항과 감정의 기복이 좌우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모두 생각이 같을 수 없듯,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도 천차만별일 겁니다.
기질이 강해서 이해되야만 받아들이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기질이 온순해서 굳이 이해가 다 되지 않더라도 알려주는 대로 고분고분 잘 따를 줄 아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완전히 대비되는 두 사람이지만, 저는 두 사람 다 훌륭한 인재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갖가의 기질에 맞게 바르게 이끌어주는 윗사람을 만나야만 두 성향의 인재 모두 자기 자신으로 멋지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청개구리 심보에 관한 아주 유명한 이솝우화가 있죠. 말 안 듣는 청개구리 아들 때문에 화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엄마 청개구리,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순간에 물가에 묻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저는 이 청개구리 이야기 속에서, 2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부모의 간섭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태어납니다. 현대의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자신이 정한 좋은 길로 가게 해주려고 합니다. 이것이 굳이 나쁜 것 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아이가 충분히 이해되도록 아이의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누고 아이를 설득시켜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되고 책임감이 생기면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반감을 가지거나 반항하지 않고 어른의 말을 고분고분 잘 따릅니다. 그게 아이들이니까요. 아이들은 어른의 지도가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동화책 속의 청개구리 엄마는 아마도 이 부분이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화병이 나서 죽음을 맞이했고, 죽는 순간에도 아이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을 말을 던집니다. "물가에 묻어달라." 왜 그렇게 말했는지에 대해 아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눴더라면, 아니 그보다는 평소에 아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눴더라면, 아들은 엄마의 말이 전적으로 이해되어서 고분고분 잘 따랐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잘 자라서 함께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는, 고집에 대한 것입니다.
혹독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고, 혹독한 부모님 슬하에서 혹독한 인연을 만나면서 자란다는 것은, 그 사람은 태생적으로 그만큼 고집이 세기 때문일 겁니다. 고집이 센 사람에게는 그 고집을 꺾어 줄 인연이 최고의 인연일 겁니다. 서로의 고집을 거울삼아 각자 고집을 꺾으면 참 좋았을텐데, 엄마 청개구리도 아들 청개구리도 고집이 팽팽했던 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엄마 청개구리는 얼마나 고집이 셌으면 화병으로 돌아가셨을까 싶습니다. 결국 고집으로 인한 어머니의 죽음으로 아들은 자신의 고집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또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이, 부모는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심지어 죽음으로라도 자식을 깨닫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부모와 자식의 오묘한 인연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이들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먼저 어른이 어른의 역할을 바르게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려면, 어른은 아이가 자신의 삶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30% 정도만 뒷바라지 해주고 의논해주면서 아이 눈높이에 맞는 설명으로 이해를 잘 시켜주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지 못한 상태에서 어른의 방식으로 계속 가르치려고만 들고, 어른의 뜻에 따르도록 억누르면서 끊임없는 간섭을 하게 되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아이들의 마음에서는 과부하가 일어나고 분노가 쌓이고 반항심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아이들의 절규가, 청개구리 심보로 드러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청개구리 심보라는 말 자체도, 어른의 입장에서 어른의 말을 따르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복장 터지는 심정을 표현한 것 아닐까요. 어른이나 윗사람이 아랫 사람을 이해시키지 못해서 윗사람의 잘못으로 반발심이 생기는 것이니, 청개구리 심보라는 말을 여기에 쓰는 것은 맞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은, 자기 자신이 되려는 자신을 억압하고 옥죄는 그런 어른 말고,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바르게 이끌어 줄 어른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기질을 잘 알아서, 그 기질이 잘 발휘되어 진짜 자기 삶을 스스로 설계해 나갈 수 있도록 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아이들이 자신의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자신의 빛을 충분히 발산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줄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충분히 이해되게 잘 설명해 주고 이끌어 주고, 마음껏 꿈을 꿀 수 있게 해주고, 그 꿈을 힘껏 지지해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어른들이 모두 행복해져서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어른의 역할을 바르게 해낼 수 있다면, 사회에 만연한 아이들의 청개구리 심보는 극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함께 노력하면 우리 사회의 청개구리 심보는 언젠가는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by 에센랩 김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