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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 Apr 11. 2021

당신의 30대는 안녕하십니까.

    서른 즈음이 되면 대체로 성인이라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키우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기 자리가 어느 정도 정돈된 상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40대로 넘어와 중반으로 흘러가고 있는 상태에서 뒤를 돌아보니 30대는 20대와는 다른 모양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멘토 선정에 신중하지 않을 경우 바람결에 청춘을 날리고 눈떠보니 중년이 되는 비극이 연출된다. 20대는 멘토 선정에 오류가 있어도 바꾸면 그만이다. 아직 30대가 남아 있으니 여유가 좀 있는 편이라고 해두자. 그러나 30대는 상황이 다르다. 누군가의 멘토가 될 수도 있는 40대를 준비하고 인생의 축을 완성하는 시절에 만난 스승 같은 존재는 어떤 중년으로 흘러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30대의 나는 그 멘토 선정에 크나큰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누구를 탓할 수 없다. 선택에 대한  부분은 온전히 스스로의 책임이기 때문에 그 결과의 엄중함도 철저하게 내 몫이었다. 철저하게 일이 우선이어야 전쟁 같은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집요한 암시 멘토링은 워킹맘들에게는 '아이보다 일이 우선이야. 어차피 아이들은 알아서 크게 되어 있어'라는 집단 최면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일을 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워킹맘의 시간을 보내며 나 또한 그 최면에 걸려 주말에도 워커홀릭으로 보내며 '이 모든 노력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독려하기 바빴다. 그때는 그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성공'이라는 단어에 대한 심사숙고 없이 사회적으로 저 사람이 '성공한 여성'이므로 '멘토'일 수밖에 없다고 믿었고 장밋빛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어리석음을 모른채 6년을 버텼다. 

    


  36살이 되었을 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는 취학과 동시에 '양육'보다는 '교육'을 해야 하고 이때부터 진짜 부모의 역할이 아이의 많은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미취학 아동기 시절에는 먹이고 입히고 아프지 않게 지내면 되지만 취학 후에는 부모와의 관계가 아이의 성장에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에 일에 더 몰두해야 한다는 최면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일에 몰두하면 일을 잘하게 되는 것일 뿐 아이가 잘 크는 일과는 상관관계가 없다. 일을 하는 엄마들에게 고비의 순간이 세 번 오는데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을 끝내고 출근을 할 때, 아이가 초등 1학년이 되었을 때, 아이가 사춘기가 왔을 때'로 나눌 수 있다. 아이를 낳고 3개월이 채 되지 않는 시점에서 업무 복귀를 했었다. 29살이었고 건강했고 무엇보다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시장에서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다급한 마음에 아이를 시터에게 맡기고 일을 시작했다. 중간에 업무를 바꾸고 또 닥치는 대로 일에 매진하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고 그때서야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를 멘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워라밸은 모르겠고 '일과 육아의 밸런스'만큼은 멘토링을 해주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초등부터 진짜 육아의 시작인데 나조차도 멘토를 찾을 길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멘토의 위치에 있는 성공한 선배들을 면면히 살펴보니 철저하게 그녀의 성공을 보필하는 친정부모님 또는 시부모님들이 있거나, 홀로이거나, 조기 유학이나 기숙학교로 아이들을 보내고 일에 몰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막연하게 아이가 어릴 때는 나도 저렇게 아이가 크면 저 학교로 저 나라로 보내면 되겠거니 하지만 아이가 막상 그 나이가 되면 비용 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아이가 원하지도 않을뿐더러 보내서 잘 된다는 보장 또한 거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고 아이를 스스로 키우지 않거나 멀리 보내면서 일에 몰두한 멘토들을 따를 경우 반드시 오류를 잡아야 하는 좌절의 시간이 온다. 아이가 잘못되었다거나 일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조금 더 영민하게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면서 일에 매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음을 6년을 돌아보면서 알게 되었다. 6년의 오류를 잡기 위해 일과 아이에 대한 균형을 잡는 데 최선을 다했고 이제는 그 시간을 충분히 복구했다. 경제적인 부분도 아이를 키우는 부분도 숙제를 해내듯 3년 만에 5년 만에 10년 만에 등등 기한을 두고 서둘러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30대 때는 학위를 받아내듯 모든 일에 기한을 두고 전전 긍긍하며 100미터 달리기 직전의 조급함으로 하루하루를 달렸다. 인생은 마라톤이고 속도를 내고 줄이는 데도 기술이 필요한데 그냥 내달리기만 했을 뿐 언제 속도를 늦추고 언제 가속을 해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30대를 보냈다. 


  그렇다고 달리는 레일을 이탈하는 것은 결코 추천 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뛰고 함께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책임과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워라밸을 즐기는 30대도 후회의 시간을 누적시킬 수밖에 없다. 1인 다역을 소화해 내야 하는 폭풍의 시절에 '나는 저런 인생을 살아야지'라고 멘토를 정하고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어떤 중년을 지나 노년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며 현재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후회를 최소화하는 30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36살에 일과 육아에 대한 큰 고민으로 방황할 때 잘못된 길을 알려준 멘토들을 싸잡아 비난하기 바빴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그건 멘토들의 잘못도 사회 구조적인 잘못도 아니고 나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다시 자책의 시간이 시작되기도 했다. 그렇게 마흔이 되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방황을 잠재우기 위해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알게 된 것은 후회하더라도 일단 달려보고 아니면 고치면 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따라 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를 책망할 필요도 없이 도전하고 해결하고 시도하면서 신나게 살았다면 후회가 조금 덜할 터였다. 폭주기관차처럼 달렸던 36의 내가 방황을 시작했던 이유는 바로 일을 진행하고 시도하고 아이를 키우는 모든 순간에 '독립된 자아의 선택'이 아닌 '의존된 자아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이 나의 삶이 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타성에 젖은 하루가 아닌 용기로 무장한 도전의 시간들이 쌓이고 모이면 멋진 40대가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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