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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 Apr 11. 2021

읽는 사람

 마흔을 넘기면서 '꼰대'만큼은 피하며 나이 들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생겼다. 어른인 척하는 사람들. 과거의 영화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성장을 멈추고 물리적 시간만 보내는 그런 꼰대만큼은 되고 싶지 않았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피하고 어떤 것에 에너지를 쏟아야 할까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해 본 결과 '읽는 사람'인가 아닌가에 따라 꼰대가 되기도 아닐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주변에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 중에 진심으로 닮고 싶고 삶에 존경을 표하고 싶은 분들은 대체로 '읽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를 가지고 계셨다. 읽는 분들은 들을 귀도 있어서 언제나 말하기보다는 듣고 질문하고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가르침을 주신다는 특징이 었다. 읽는 행위가 주는 문해력의 차이가 시간의 누적에 따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격차를 현격하게 벌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주변에는 이와 반대인 사람들이 더 많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읽는 사람'에 대한 집착 같은 애정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읽지 않고 성장을 멈춘 채로 마흔을 지나 쉰의 나이로 옮겨가고 있는 분들과 대화할 때는 이야기가 이어지고는 있으나 단절된 채로 단어가 나열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주로 캐묻고 가르치고 지시하고 '넌 틀렸고 내가 맞다'의 논리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대화는 언제나 산으로 가기 마련이다. 이런 분들과 일을 하게 되면 더 난처해서 일의 방향이 매우 곤란한 쪽으로 흘러가고 수정 보완하느라 애를 먹기도 한다. 읽지 않는 분들의 특징은 말에 단정적인 표현이 많다. '절대', '현실적으로 말하면', '결코' 등의 부정적인 말머리가 많이 쓰인다. 이렇게 시작된 문장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내용이 연결되고 듣는 사람의 기를 죽이고 더 이상의 의견을 낼 수 없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보고 나면 다시 한번 보고 싶은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할 나이가 되었으니 작심하고 '읽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읽고 배우고 정리하고 '알고 있다'는 착각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보통 뇌의 전두엽은 만 13세가 되면 성장을 멈추고 지력이 떨어진다고 알고 있지만 '뇌신경 가소성'이라는 원리에 따라 뇌를 꾸준히 쓰고 겸손하게 배움을 멈추지 않는 한 끊임없이 성장 발전한다는 뇌과학 연구결과가 이미 오래전에 발표된 바 있다. '읽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뇌를 녹슬지 않게 두는 것, 그 무섭다는 치매를 예방하는 데도 이만 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뇌에 접속하는 행위다.

  여행이나 경험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고 배울 수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다른 누군가가 애쓰고 노력하여 본인의 지식과 에너지를 갈아 넣은 책 한 권을 마주할 때의 깨달음은 뇌에 주는 자극 자체가 다르다. 다른 사람의 뇌에 접속하는 행위에 치열하게 목적의식을 가지고 집중하고 싶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가 '북스타 그램'이었다. 팔로워를 늘리는 목적이라기보다는 만방에 나는 '읽는 사람'이라고 공표하고 읽기 시작해야 구속력이 있어서 계속 읽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되도록 많은 분야의 글들을 읽기 위해 노력하고 정리하고 같은 페르소나로 활동하는 분들의 글들을 읽으며 견고하게 '읽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를 구축하는 중이다.


   '읽는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한 지 언 3년이 지났고 SNS를 운영한 지는 9개월 정도가 되어간다. 이 시간 동안 정말 많이 겸손해지고 들을 귀가 생겼다. 말하기 바빴던 지난날을 돌아보면 장족의 발전이다. 이대로 시간을 누적시키다 보면 적어도 꼰대가 될 일은 없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드는 것을 보면 '읽는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최근 미래학자 한 분이 'AI가 직업을 없앤다기보다는 인사이트가 없는 사람들이 자리를 빼앗길 것이다'라고 했다. 자신의 인사이트! '혜안, 지혜, 식견'인 인사이트는 그냥저냥 살아가면서 생기는 주름살 같은 것이 아니라 소유하기 위해 발버둥 칠 때 비로소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 발버둥의 가장 좋은 행동이 읽는 행동이라고 하니 '읽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는 멋지게 늙는 용도로도 미래 인재로 성장하는 데도 더없이 좋은 수단이 아닐까.

  오늘도 내일도 '읽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다. 소중한 내 인생이 단 한순간도 녹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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