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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 Apr 28. 2021

'울면 안 돼'라는 최면

 크리스마스 캐럴 중에 머라이어 캐리가 불러서 더욱 유명해진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이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울면 안 돼'로 알려진 캐럴인데 원 가사에는 울면 안 된다는 말은 한 번 만 나온다. 게다가 산타할아버지가 울면 선물을 안 준다고는 어디에도 없다.' 밖에 잘 보고 있고, 삐져있거나 울고 있지 마, 산타가 곧 우리 마을에 오실 거니까' 정도의 해석이다. 그런데 우리는 '울면 안 돼'를 세 번이나 강조하고 심지어 산타가 주려던 선물도 안 주고 가져간다고 엄포를 놓는 무서운 노래로 바꿔버렸다. 어릴 적에 나쁜 행동에는 거짓말도 있고 부모님께 대드는 행동이나 친구와 싸우고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등 우는 것보다 죄질이 나쁜 죄목들이 많은 데도 유독 왜 우리나라에 오는 산타는 '울보'에게만 선물을 주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정말 울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인지 운다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인지 궁금했지만 크리스마스에는 일단 선물을 받아야 하므로 어른들에게는 물어보지 않았다. 괜한 질문을 했다가 내 머리맡에만 선물이 날아가는 비참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할 수는 없으니 조용히 주는 대로 받자고 생각했다.

  유치원에서 한 친구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심사가 뒤틀려 울면서 집에 왔던 적이 있었다. 엄마가 직장에 다니셨기 때문에 평일에는 외가댁에서 지냈는데 외할머니께서 울고 있는 나에게 말씀하시길 '어떤 싸움에서도 먼저 울면 지는 거야!'라고 하셨다. 산타할아버지는 울면 선물을 안 주고, 싸울 때는 먼저 울음을 터뜨리면 지는 거다. '그래, 눈물은 나쁜 거야. 우는 건 지는 거야.' 어릴 적 눈물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게 친구에게 선빵을 날리는 것보다 나쁜 행위쯤으로 각인되었다.

  어린 시절의 끝자락인 5학년 때 학교에서 싸움이 났다. 여자아이 둘의 싸움이었다. 싸움의 장소였던 복도는 삽시간에 구경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나는 조금 늦게 그 무리에 합류했던지라 싸움의 내용은 못 듣고 둘이 무섭게 노려보는 모습만 보게 되었다. 그런데 한 아이의 매서운 눈초리에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주르륵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아이들이 웅성대더니 한 아이가 소리쳤다. '**이가 졌다!'라고. 판정 패를 당한 아이는 먼저 눈물을 보인 아이였다. '울면 안 돼' 삼창으로 겨울을 보낸 햇수가 10년이 넘은 아이들이니 '눈물'은 패배의 상징이자 약자의 모습이며 선물을 포기한 자의 표징이었을 것이다.

  

 사춘기 때는 슬픈 영화는 아예 보지 않았다. 눈물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눈물이 스스로에게 허락된 시간은 샤워기를 틀어 놓았을 때로 정해 두었을 정도로 눈물에 예민했다. 모두가 예민하던 고3 때는 친구 한 명이 분명히 운동장 스탠드에서 울고 있었는데 나중에 괜찮냐고 물으니 '뭐가?'라며 애써 숨기는 눈치였다. 눈이 퉁퉁 부어 있어서 '나 아까 엄청 울었다'라고 얼굴에 잔뜩 쓰여 있는데도 울었다는 사실은 결코 공개되선 안 되는 묘한 금기 대상이었다. '너 얼굴 엄청 부었는데, 혹시 울면 산타가 선물 안 줄까 봐 숨기는 거야? 내가 산타한테 비밀로 해줄게!' 라며 친구를 위로했었다. 친구는 그 말에 박장대소를 하며 깔깔거렸었다.

 산타가 선물을 안주는 건 아니지만 왠지 눈물은 어떤 상황에서도 참는 게 미덕이고 승자의 여유쯤으로 각인되어 버린 탓인지 눈물 참기 훈련은 엄청난 효과를 거두고 급기야 안구 건조증 때문에 안과에 자주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 흔한 눈물 하나도 제대로 없어서 약국에서 돈을 주고 눈물을 사서 줄줄 넣고 다니면서도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워낙에 많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라고 불리기 시작하면서 잠가놨던 눈물 꼭지가 한 번에 터져버린 상태가 되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수유를 할 때 그 볼이 너무 이뻐서 갑자기 눈물이 나고, 깨끗하게 목욕을 씻겨서 로션을 발라주는데 너무 이뻐서 울컥하는 나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산후 우울증이 의심돼서 진단검사도 받았지만 정신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냥 좋아서도 눈물은 날 수 있는 거니까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웃으며 말씀해 주셨다. 그렇다. 좋아서도 울 수 있는 건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눈물은 '패배의 상징'이고 '응징의 대상'이었던 시절을 너무 오래 버티며 살았다. 슬퍼도 아닌 척, 기뻐도 아닌 척 그렇게 지내다가 내 뱃속에서 한 몸으로 10달을 살다가 떨어져 나온 귀염둥이 덕에 눈물샘이 터지고 안구 건조증이 나아버렸다.


 물론  아직도  나에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충분히 울어도 되는 상황에서도 이내 눈물을 삼키고 있는 나를 보면 아직도 산타를 의식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 '울면 안 돼'라는 캐럴은 많이 불러주지 않았다. 눈물은 1년에 단 한 번 어린이가 누리는 특권을 앗아갈 만큼 금지되어야 하는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 때나 징징 울어대지만 않는다면 눈물은 나쁘지 않다. 남자도 울어도 되고 여자도 울어도 된다.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증거이고 실컷 울어버렸을 때의 그 상쾌함은 진심을 다해 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오히려 잘 웃고 잘 우는 1년을 보낸 사람에게 크리스마스는 더 특별할 수 있고 산타 선물도 받을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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