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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 Aug 01. 2021

성적 올리는 일은 정말 어려울까?

사교육 시장의 부정적 가스라이팅에 엄마들은 오늘도 지갑을 연다.

아이가 드디어 고등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때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학업 스트레스로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한 학기를 보냈다. 덩달아 살면서 처음 해보는 고등 학부모의 경험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느낌이랄까? 성적이 맘같이 나오지 않아 괴로워하는 아이를 마주할 때의 통증은 상상 그 이상이다. 멘털만큼은 자신했지만 '성적은 촘촘하게 짜인 그물망 같아서 뚫고 앞으로 나가기 어렵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흔들리는 정신을 부여잡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주 빈번하게 사교육 시장에서 듣던 말은

"어머니! 지금 해 놓으시지 않으면 고등학교 가서 고생합니다."

선행에 관한 불안감 조성과

"어머나! 지금 이 상태면 고등학교 가서 절대로 1등급 못 받습니다!"

성적 향상에 대한 불안감 조성으로 해당 학원에 아이를 맡기지 않으면 결코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는 엄포에 마음은 언제나 갈대처럼 흔들린다. '마케팅에 현혹되선 안돼! 그래도 혹시나?'


엄마들은 항상 불안하다. 특히 학원 상담을 받으면 더욱 그렇다. 엄마인 나는 96학번이고 최신 입시에는 문외한이고 2021년의 고등학교 교육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니 누구가의 컨설팅은 간절했다. 더 많은 경험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바로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인한 결과물이다.

"어머니 때랑은 완전히 달라요. 옛날 생각하시면 안 되세요."

그렇다. 96년 수능을 치를 때와 지금의 수능은 다르겠지. 그때의 내신 공부와 지금의 내신은 다를 것이 분명했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했으니 입시도 괄목상대할 변화가 있었을 거라 믿을 수밖에.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한 학기를 보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 분야는 1996년도 수능을 치르던 그때부터 이제까지 단 하나도 변한 구석이 없다. 한 가지 있다면 '성적은 올리기 어렵다'는 부정 암시가 아주 견고하게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최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드시 확인하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공부는 정해진 점수가 있다는 점이다. 공부는 올림픽이나 여타 예체능처럼 기록이나 상대적 고득점이 결과를 좌우하는 경연이 아니다.

가령 어떤 육상 선수가 우사인 볼트가 세운 세계기록을 목표로 훈련을 하고 올림픽에 나갔다고 하자. 이 선수는 최선의 기량을 뽐낼 준비가 완벽하고 우사인 볼트의 세계기록을 경신하는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 냈다. 누구나 금메달을 확신했지만 더 빠른 제2의 우사인 볼트가 따로 있었다면 아쉽지만 1등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한계가 없는 기록경기는 두터운 선두주자의 벽을 뚫고 올라가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부는 100점이라는 파이널 골이 있다. 누구나 100점을 맞으면 1등이다. 공동 1등이 수두룩해도 일단 100점을 맞으면 된다. 그러니 두터운 선두주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그 0.01%의 구역은 사실 100점을 목표로 하면 뚫고 올라갈 수 있는 구역이다. 공부머리가 좋고 공부를 즐기고 엄청난 천재여도 수능은 만점이 정해져 있다. 각 과목 100점.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 이 말은 결국 경쟁이 아니라 100점을 맞으면 되는 일이다. 그러니 성적을 올리기 어렵다는 말은 애초에 잘못된 말이다. 특히나 잘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기도 하다.


'100점이 말이 쉽지 그게 되겠어요?'

메타버스가 등장하고 사물인터넷으로 세상이 움직이는 놀라운 IT혁명의 시대이지만 교육은 96년 그때와 똑같다. 이 말은 결국, 96년 그 시절의 공부법으로 원하는 것을 이뤄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수시가 촘촘하고 정시는 바늘구멍이라고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변함이 없다. 즉, 누가 더 많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긍정 암시를 주면서 극복하느냐의 게임이라는 뜻이다. 100점은 고1 때 시작해도, 고2 때 시작해도 맞을 수 있다. '할 수 없다', '어려운 일이다', '네가 되겠니?' 같은 부정 암시로 가득한 채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을 뿐이다.   


'전교 1등이 다니는 학원, 서울대를 다수 배출한 학원, 반드시 성적을 올려드려요'같은 마케팅 문구에 홀린 듯 학원으로 가서 상담을 받고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돈을 내면 가능하다'는 말에 속아 지갑을 열고 아이들을 밀어 넣는다. 그러나 생각만큼 결과가 신통치 않다. 이유는 한 가지! 목표도 없고 이유도 없는데 심지어 '쉽지 않다'는 도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원하는 대학이나 전공을 선택해야 할 때 학업 역량이 중요하다면 학원으로 달려갈 게 아니라 명확하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세우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공부로 승부를 보는 세계는 남들과의 경쟁이 아니라 '하기 싫은 나', '놀고 싶은 나', '더 자고 싶은 나'와 치열하게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끌어내리는 부정 암시를 끊어내고 '나는 간다! 두고 봐라!'라는 자기 암시로 가득 채운 다음 학원에 가든 인강을 듣던 해야 필승이다.


대단히 엄청난 무언가가 있는 줄 알았던 고등학교 교육에 대한 불안은 사회와 사교육 시장의 부추김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이었다. 지금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정정당당한 승부를 던졌을 때의 이야기다.  아이들은, 아니 사람은 언제나 성장할 수 있도록 세팅된 긍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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