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랬어야 했다'는 후회는 현실 부정의 원인이 된다.
요즘 지인들을 만나면 '그때 그 집을 샀어야 했어'라든가, '그때 그 주식을 샀어야 했다'는 '했더라면'의 이야기가 대화의 화두가 되곤 한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과거는 과거일 뿐, 미련을 버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던 나조차도 이 'IF'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화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적극 동참하면서 생각한다. '그때 그 순간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과거를 묻고 따져봤자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마음의 고삐를 놓으면 엄습해 오는 후회는 불안을 낳고 불면의 밤을 남긴다. 며칠 동안 불면의 밤을 보내며 생각했다. 이 불안의 시작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왜 'IF'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가?
40대 중반이 되고 보니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일들과 지나온 나날들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다 못해 폭발하고 있다. 폭발하는 중심에 바로 '만약에 내가 그때'가 있었고 회한의 시발점이 된다. 어쩌면 곧 50이 된다는 생각, 아이가 곧 고3이 된다는 생각, 부모님이 곧 팔순이 넘어 버린다는 생각 등등 시간이 주는 압박감이 초조함을 가져오고 자꾸만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지인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보니 초조함은 과거의 후회와 '만약에'를 양산한다.
밤새도록 에너지를 온통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때 저 집을 샀더라면', '그때 그 주식을 샀었어야', ' 그때 그 청약을 넣었더라면', '그때 우리 아이를 그 학원에 보냈더라면', '그때 그 학원에 보내지 말았더라면', '그때 좀 더 신중했더라면', '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등등 엄청난 양의 'IF'들이 세를 모아 공격태세를 갖추는 동안 나는 무방비 상태로 멍하니 앉아서 저항을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냥 그렇게 후회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IF'의 역습에 공포심을 느낄 필요는 없다. 문제는 'IF의 역습'은 강력하고 치밀해서 한번 공격받으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나의 시선이 무한정 과거에 맞춰지고, 후회와 회한이 마음을 가득 메우면 현실을 자각할 에너지와 미래를 설계할 영민함이 빛을 잃는다.
'IF'의 역습에서 자신을 방어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세 가지 룰이 있다.
첫째, 과거 그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그때의 나였다면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면 결국 나는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때의 나는 경솔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길게는 10년도 더 된 그날의 선택이다. 10년이나 어렸던 그 시절에 그 선택은 그 나이에서 최선이었다. 사람은 자신을 명확하게 인정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소설가 '안톤 체호프'이 말했다. '그날 그 선택은 최선이었다'라고 인정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좋은 선택의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역사는 반복되고 기회는 다시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IMF 즈음해서 집값이 대 폭락을 하고 온 나라가 난리가 났을 때, 대학 친구 한 명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면 경기도 일대에 땅을 사러 다녔다. '학생이 무슨 복부인처럼 땅을 보러 다니냐'라고 핀잔을 했는데 그 친구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라도 짓고 살라고' 라며 그렇게 땅을 사 모았다. 한동안 그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을까?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그러나 돈의 역사만큼은 언제나 반복된다. 후회하고 부러워할 시간에 그동안 무지했던 시간들을 반성하며 많이 배우고 익혀서 기회를 포착하는 눈을 기르면 된다. 기회가 또 오고 있으니 잡으면 그만이라는 배포를 갖자.
셋째, 몸을 많이 움직이자.
땀을 내서 운동하는 일은 다이어트나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지만 정신건강에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들이 이야기한다. 정말 후회되고 화가 나는 날에는 일단 나가서 달리거나 걷는다.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 같은 것 하나 꼽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 집에 돌아오는 길에 '뭐 앞으로 더 잘하면 되지!' 이런 배포가 생긴다. 역시 전문가들의 조언은 귀 기울여 손해 볼 것이 없다. 일단 뛰면 에너지가 생긴다.
인간의 에너지는 유한하고 하루에 정해진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서 쓰느냐에 따라 충실감이 달라진다고 한다. 후회가 완전히 없는 그런 삶이 어디 있을까? 다만, 조금이라도 후회의 양을 줄이고 'IF'의 역습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면 에너지를 제대로 써서 방어막을 만들어야 한다. 그 방어막은 결국 한 가지, 과거로 시선을 돌릴 틈을 주지 않는 것 미래 지향적인 곳에 에너지를 올인해 버리는 것이다.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후회보다는 박수가 남는 인생은 결국 내가 지금 어디에 에너지를 쏟느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