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7시, 눈뜨자마자 암막커튼 사이로 밖이 보일락 말락 틈만 만들어 날씨를 확인한다. 아무렇게나 머리를 질끈 묶고 대충 세수만 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체육공원 트랙 위에 선다. 선을 따라 빙빙 도는 것이 지루한 날은 호숫가 데크로 향한다. 아침 달리기를 만난 것은 작년 봄, 우연한 기회로 달리기 모임에 합류하면서부터다. 체력장 100m 달리기도 친구와 손잡고 건성으로 뛰어 체육선생님이 매를 들고 뒤쫓게 했던, 오래 뛰면 목구멍에서 정말 피 맛(쇠 맛 같기도 한)이 나는 괴로움에 심장 어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심각하게 걱정했던, 런닝머신이 싫어 헬스장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내가 달리기를 한다고? 그래, 뛰기보단 꾸준히 걷는 습관을 키워보자, 그러다 가능해지면 가볍게 달려나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토요일 아침마다 걷기와 달리기를 하며 어느새 1km, 2km,,, 쉬지 않고 달리는 거리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뛰는 게 제일 싫었던 내가 주말 꿀 같은 아침 시간을 내어 달리고 40살 처음으로 달리기에 재미를 느끼고 욕심을 갖게 되었다.
한여름 한겨울, 눈 비가 오는 날은 달리기를 쉬어야 하니 연중무휴는 아니지만 주 1회 달리기는 이제 나에겐 하나의 습관이다. 새로운 변화를 위해 시작한 달리기가 변하지 않을 일상이 되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늘 같은 모습의 트랙,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부담 없는 곳, 오로지 내 힘과 의지에만 결정되는 달리기라서 좋은 걸까. 8km를 46분대의 페이스로 지금껏 100회 이상 달려왔지만 처음 2km, 3km 구간까지는 매번 고비이다. 내가 정말 8km를 완료할 수 있을까? 오늘은 진짜 무리인 거 같은데,,,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달리지만 오른발 왼발 두 발이 땅을 딛고 박차는 규칙을 반복하며 나는 어느덧 절반인 4km를 달리고 있다. “목표한 달리기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힘내세요!” 런데이앱 응원의 한 마디를 들으며 다시 힘을 낸다.
달리며 만나는 호숫가 풍경, 파란 하늘은 반복되는 두 발 운동의 지루함을 잊게 해준다. 조용한 아침, 탁탁 탁탁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와 마스크 안에 모아져 더 거칠게 들리는 내 호흡소리만 가득하다. 달리는 동안만큼은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다른 이가 아닌 내가 자신을 들여다보고 몸 구석 구석의 느낌을 살핀다. 애정을 담아서,,, “축하합니다! 목표를 완료했습니다.” 내내 기다렸던 알림에 내 거지만 내 거 아니게 느껴지는 무거운 두 발은 드디어 멈춘다.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 작은 목표를 완료하고 축하를 받는다. 땀을 식히려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가로수를 올려다보니 가지마다 가득 달린 금빛 단풍잎이 보인다. 빽빽한 단풍잎이 파란 하늘 아래 쳐진 따뜻한 커튼 같다. 가을 감성에 젖어 이대로 누워 멍 때리기라도 할까 싶은데 바로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엄마, 오늘은 달리러 백운호수로 갔어? 왜 안 와요?” 조금 여유를 부렸더니 귀가를 채근하는 전화가 온다. 그래 집으로 가야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아침 시간은 여기까지다.
회사-집을 오가며 업무-집안일을 반복하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려 새롭게 찾은 또 다른 반복이 나에겐 달리기이다. 반복이 싫어 새롭게 찾은 반복이라니,,, 정해진 규칙에 답답함보단 안정과 편안함을 먼저 느끼는 사람이 나니까. 달리기라는 큰 퍼즐 한 조각이 비어있던 내 시간을 채워 연결하고 맞춰주니 다시 마음이 즐겁다. 달리며 다리를 쭉쭉 내뻗은 만큼 삶이 앞을 향해 나아가고, 두 발이 땅을 디딘 만큼 의지가 단단해졌으면. 현실의 진짜 쓴 맛 알게 돼서 일까? 이젠 쉼 없이 40여분을 달려도 씁쓸한 피 맛은 더 이상 나지 않는다. 갈증 속 달큰한 내 입김과 기분 좋은 땀냄새가 난다. 여전히 8km 완료는 힘들지만 결국 견딜 수 있음을 아는 안도감이 나를 믿고 계속 달리게 한다. 출발 전 목표거리를 설정할 때마다 손가락 끝에 가득 매달린 고민, 10km는 언제쯤 가능할까? 천천히 달리자. 나의 달리기는 40살부터니까!
November 20,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