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눈뜨면 가장 먼저 만들어 내는 나의 결과물은 도시락이다. 우아하게 식단 관리용 과일샐러드 도시락이면 좋겠지만 내 것이 아닌 아이의 점심 끼니이다. 시작은 작년 11월, 코로나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고 학교급식이 중단되고 부터니 벌써 일 년이 넘었다. 다행히 등교날 급식이 제공되어 원격수업을 하는 주 2-3일로 도시락 싸는 부담은 줄었다. 잠이 완전히 달아나지 않은 새벽, 큰 그릇 소리라도 날까 손 끝에 힘을 주고 도시락을 준비한다.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호출하는 6시 35분까지 기상 후 60분의 시간, 그 안에 도시락 미션과 출근 준비를 완료해야 한다. 휴대폰 기상 알람에 10분만 더~를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없는 이유다. 국, 밥, 반찬 각각의 용기를 한 층씩 쌓아 담은 묵직한 보온도시락을 식탁 한가운데에 올려놓고 주방 조명은 끄고 거실 등을 켠 채 집을 나선다.
점심에 식어 굳어진 밥이 넘기기 힘들까 봐, 따뜻한 국물은 꼭 찾는 아이라 한여름에도 변함없는 보온도시락이다. 이름도 익숙한 그 시절 너와 나 우리의 추억 소환, 코스모스(cosmos)! 어떤 걸 구매할까 검색해보니 유명한 건 대부분 ‘made in Japan’,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인 때라 두 눈 슬쩍 감고 일본 제품을 살 순 없었다. 구관이 명관이라 했던가, 최종 선택된 코스모스 보온도시락은 'SINCE 1968'이라고 새겨있는 외관뿐 아니라 내부 용기까지 어쩜 예전 그대로이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보온도시락이었구나. 매번 같은 도시락을 싸는 나도 질리는데 꺼내 먹어야 하는 너는 말할 것도 없겠지. 다른 색과 디자인으로 하나 더 사서 번갈아 쓸까 하다 결국 내 귀찮음 탓에 충실히 잘 사용하고 있다.
초등 3학년 책가방 무게의 최고 지분이 바로 이 보온도시락, 다 먹은 후에도 여전히 무거운 보온도시락을 매일 넣고 다니느라 아이도 애썼던 날들이다. 국과 반찬 종류가 겹치지 않게 틈틈이 메뉴도 생각하고 식단도 짜지만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도시락과는 거리가 있다. 콩나물국에서 미역국으로 이어지는 바통터치와 반찬 돌려 막기로 하루하루를 채워왔다. 원격수업이 끝나고 혼자 씩씩하게 도시락 먹는 아이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귀한(?) 고기반찬 몇 점 남긴 걸 발견하면 곧장 잔소리 폭격이다. “이걸 배불러서 남겼어? 엄마가 새벽에 반찬 만드는 건 생각 안 하니?” 내뱉고만 유치한 생색에 후회와 부끄러움이 몰려와 남은 음식을 물과 함께 재빨리 개수대에 쏟아버린다.
나에게 보온도시락 하면 짙은 밤색의, 손에 들고 걸을 때마다 찰찰 소리가 났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오빠랑 번갈아 가며 여러 번 떨어뜨려서인지 부모님은 한참을 새로 사주시지 않았다. 찰찰 소리를 내는, 보온도 잘 안 되는 도시락을 벌인 듯 무겁게 들고 다녀야만 했다. 아이는 커서 도시락에 어떤 추억을 떠올릴까? 다른 듯 비슷한 매일의 반찬들과 뚜껑을 너무 꼭 닫아 먹지 못했던 국이 생각나려나. ‘위드코로나’가 시행된 이번 주부터 아이는 전면 등교를 한다. 이 말은 당분간 도시락 미션에서 해방이라는 거. 코로나 확진자 수를 보며 여전히 걱정은 크지만 일단 ‘전면 등교 만세, 도시락 해방 만만세!’라 외치고 싶다. 일년 내내 벨소리 없이 진동모드인 내 휴대폰 알람을 이젠 10분쯤 늦춰도 되겠지? 식탁 위 같은 구도로 찍은 도시락 사진 96컷이 담긴 폴더가 일기처럼 남겨졌다. 설거지 후 잘 건조한 코스모스 보온도시락을 주방 수납장 깊숙히 팔을 쭉 펴 밀어 넣는다. 꼭꼭 숨어라.
November 27,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