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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인 May 25. 2023

다름은 닮음으로 가는 중

다름은 닮음으로 가는 중


달랑 3인 구성원 우리 집에는 디지털네이티브와 아날로그원주민이 공존한다. 양쪽 진영은 확실한 자기 영역 구축과 적당한 타협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누가 봐도 내가 후자인 아날로그원주민이자 디지털이민자, 하나 더 정의하면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나이다. 꼭 필요한, 있어야 할 것만 그 자리에 있으면 만족하기에 인테리어 컨셉은 자연스레 ‘휑함’이다. 지인들을 초대하면 집이 깔끔하다는 말을 첫 마디로 듣지만 정확히는 휑하다의 에두른 표현일 것이다. 내겐 마냥 신기한 스마트기기들과 자동화시스템을 집안 곳곳 적절히 배치한 디지털네이티브, 얼리어답터인 남편 덕에 썰렁함보단 깔끔함을 먼저 느끼게 해주니 다행이랄까.


정리 정돈이 최고의 홈스타일링이라 생각하는 미적 감각 없는 난, 가구 외에는 보이는 걸 최소화하는 것이 원칙이다. 퇴근 후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정해진 동선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그 위치에 있어야 할 물건을 확인한다. 좌표에서 벗어만 사물은 낮 시간 집에 머문 한 사람, 아이의 소행이기에 혼자 지낸 하루를 그려볼 수 있다. 양손 엄지와 검지를 맞닿아 만든 사각 프레임으로 어느 곳을 가리켜도 깔끔한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게 유일한 목표다. ‘처음처럼’파인 나와 정반대 ‘바꿔다바꿔’파 남편은 조명부터 센서 등으로 전면 교체했다. 덕분에 방문객에게 “화장실 불 안 켜도 되요.” “그냥 두고 나오세요.” 우리 셋은 돌아가며 외쳐야 하지만 말이다. 종종 배터리나 서버 연결 문제로 센서 등이 작동하지 않으면 그간의 편리함은 잊고 반사적으로 한숨 반 짜증 반 목소리로 남편을 부른다. “얘 센서 안되잖아. 그냥 스위치 누르면 돼?” 매번 방법을 알려줬으나 마음이 없어 기억하지 못하지. 설정 시간에 맞춰 작동하는 (가구원수보다 많은)공기청정기, 청소기, 전동커튼, 블라인드, 조명,,, 홈오토메이션에 익숙해지며 나도 모르게 ‘보며들고’ㅡ남편 이름 '*보'ㅡ있음을 인정한다.


남편 방에 들어서다 훈훈한 열기에 흠칫 놀란다. 컴퓨터, 정확히는 그래픽카드에서 내뿜는 열이 모두 합치면 10개도 넘는 쿨링팬(fan)의 충실한 기능으로 방안을 가득 채운다. 비트코인 채굴하는 수익의 현장이냐며 농담을 던지다 무반응에 혼자 웃고 만다. 책상 옆 선반에 올려진 PC본체의 빨강 파랑 초록 LED조명이 화려한 빛을 낸다. 강화유리를 통해 훤히 보이는 내부 공간에는 피규어 몇 개도 들어있다. PC본체라면 당연히 책상 아래 바닥 가까이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는 거 아닌가. 회사에서 발치에 종종 치이며 먼지나 가끔 날려 청소해주는 게 관리의 전부인 내 데스크탑 신세가 안타깝다. 품 안에서만 겨우 잠드는 신생아를 키우며 이름도 어려운 ‘드퀘르뱅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3개월의 산전후휴가 후 남편은 내 손목과 엄지손가락 통증을 걱정하며 키보드와 마우스를 복직 선물로 안겨주었다. 인체공학 버티컬 마우스라는 신문물은 게임용 조이스틱인가 오해를 하게 만들었고, 손목 피로를 줄여준다는 곡선형 구조의 높이가 미세 조절되는 기계식키보드는 특유의 소리로 스스로 업무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고스란히 집으로 돌아온 마우스와 키보드는 남편이 중고사이트에 올리자마자 ‘쿨거래’ 되었다.


3년을 꽉 채워 사용한 휴대폰을 몇 달째 바꾸지 않자 남편은 최신모델 휴대폰의 최저가를 직접 검색하여 친절하게 링크를 보낸다. 별 반응이 없자 견디지 못하고 우리의 두 번째 커플폰을 제안한다. 우습게도 커플폰이란 의미가 덧입혀지니 관심이 생기고 만다. 나의 긍정적 반응에 남편은 그날 바로 두 대의 휴대폰을 결제하고 케이스, 차량용거치대, 무선충전기,,, 연결동작으로 주문을 마친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동시에 도착한 휴대폰과 악세서리가 담긴 박스가 현관 앞에 여러 개다. 남편은 저녁을 먹자마자 거실테이블에 앉아 자기 몫의 휴대폰에 신중히 액정 보호필름 부착 작업에 돌입한다. 반면 나는 “꺼낼 기운도 없어, 내일 열어 볼래” 박스 안 최신 휴대폰을 확인하지도 않고 밀어 놓는다. 소개팅으로 만나 3년의 연애를 지속하며 다름은 그만의 매력, 대체불가한 특별함이었다. 이제 결혼 13년차, 시시각각 발견되는 우리의 다름이 닮음으로 가는 단련 과정에 ‘다정’이 있음을 안다. 일상에서 늘 종종거리면서도 변화를 거부하는 나에게 더 좋은 것, 더 편한 것을 주고 싶은 남편의 다정함이 있다. 너무도 다른 둘이 닮음까지 닿을 수 있을 지 확신도 바람도 없지만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며 다정한 이해를 매일 차곡차곡 쌓는다. 저녁 식탁 마주 앉은 디지털네이티브와 아날로그원주민은 반주를 나누고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하며 오늘도 평화롭다.


March 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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