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론 (유감스럽지만) 아이에게도 특별할 거 없는 여름방학이 일주일 남았다. 식탁 위에 조촐한 아침식사가 담긴 나눔접시와 점심 보온도시락이 방학 내내 함께 했다. 출근 전 주방 등을 끄려다 식기건조대에 물기 마른 수북한 식기들이 눈에 거슬려 몸을 돌려세운다. 다행히 5분 정도 여유가 있다. 큰 냄비부터 선반에 넣고 3인 가족 맞나 싶게 많은 접시들을 크기 순으로 세운다. 공기들은 쌓아 올리고 어른/아이 수저를 각각의 수납통에 꽂아 건조대를 텅 비운다. [06:36] 더 이상 지체하면 아침부터 뛰어야 한다. 식탁과 싱크대에 짧게 시선을 던지고 미련 없이 조명을 끈다. 5분 일찍 출발하여 느긋한 걸음을 선택할 수 있지만 결국 마지막 몇 초까지 소진하고 정해진 시간에 현관을 나선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돌아와 아침 흔적을 치우는 건, 체감상 몇 배의 수고와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뭐든 ‘원래대로’ ‘바르게’가 내 삶의 항상성을 위한 원칙이다.
내 몸에 대해서도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다. 온전한 나를 위한 소비, 나름의 사치는 마사지샵 회원권이다. 평생 VIP도, 고급 스파 회원권도 아닌 동네 손맛 좋은 원장님의 1인샵 10회 이용권이지만 90분 마사지에 나의 3시간 시급을 과감히 지불한다. 8시간 대부분을 책상에 손목을 대고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자면 어깨는 자꾸만 솟아오르고 등은 굽어 모니터로 들어가려는 현실판 ‘사다코’(영화 링의 우물 귀신)가 되고 만다. 동굴안 종유석, 처마밑 고드름이 자라듯 귀와 어깨가 서서히 닿을지 모른다는 상상은 공포 영화보다 소름 끼친다. 귀-목-어깨-쇄골 부위에 집중된 데콜테 마사지를 받으며 나의 몸은 원래의 자리로 바르게 맞춰진다. 내 몸 림프절을 수백 번 문지르는 주먹 쥔 손등뼈를 느끼며 관절염이 직업병이겠구나 걱정이 들다가도 유연하게 회생하는 승모근이 우선 반갑다.
2차 성징이 발현되는 성장기, 남다른 가슴 발육을 숨기려 어깨를 움츠릴 필요는 애초에 없었다. 훅 자라지 못한 아쉬운 키라 허리를 곧게 세우고 목을 길게 빼야 원하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롱다리 롱다리 롱롱~ 유행어를 흥얼대던 때, 숏다리 국민학생은 신체검사 앉은키 측정대에 한껏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는다. 학급 최장신 친구 보다 앉은키가 큰 걸 자랑스러워한 바보가 나였다니. 요가 3년에 이은 필라테스 2년은 일상의 가장 중요한 루틴이자, 식사처럼 살기 위해 챙긴 운동이었다. 하루 종일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던 근육을 작약 꽃잎처럼 하나 하나 조심스레 연다.내 몸 구석구석을 세심히 살피는 시간이 나를 위한 보상 같아 소중했다.
기한은 3일 남아있지만 빨간색 굵은 폰트로 중요도를 알리는 요청 문서가 자꾸만 눈에 거슬린다. 개운하지 않은 기분에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오늘 마무리하기로 한다. 대놓고 야근이 아닌 어정쩡한 퇴근 시간은 밀집도 최고 지옥철을 피할 수 없다. 플랫폼 가득했던 사람들이 밀물처럼 열차 안으로 쓸려 들어가는 것을 보며 옆으로 비켜선다. ‘자, 더~ 더 타세요.’ 다음 열차를 타기로 마음먹은 승객의 이기심이다. 옹졸함에 대한 벌인지 곧이어 도착한 열차의 밀집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손잡이도 잡을 수 없는 붐비는 객실 안에서 가슴을 내밀고 어깨를 내린 바르고 곧은 자세는 불가하다. 떠밀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반대로 무게중심을 최대한 아래에 두고 구부정한 자세로 자기를 지켜야 한다. 내쫓기듯 떠밀려 내린 도착역 계단을 오르며 아킬레스건부터 경추까지 쭉 뽑아 세운다. ‘정수리가 천정에 닿을 듯 목을 최대로 길게 뽑고’ ‘흉곽을 닫고(?) 배꼽은 등쪽으로 보내고’ 여전히 이해 못 할 설명이지만 반듯하게 몸을 세우러 필라테스 수업을 등록해야겠다. 피부관리샵에 이어 필라테스까지,,, 이번 달 지출이 꽤나 크다. 입신(立身)을 위해 월급 날까지 성실히 일해야만 할 이유가 충분하다.
August 20,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