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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데뷔

by 가을산

어릴 때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교회를 주일 학교라 불렀으니 교회에서도 학생이었다. 성경 암송 대회, 성경 퀴즈 대회, 성가 연습, 크리스마스 축하 공연 등 교회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방학 때 ‘여름 성경 학교’가 열리면 일주일 동안 날마다 교회에 가서 온종일 ‘놀다’ 왔다. 그렇다. 나는 교회 가서 놀았다. 교회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도 부르고 노는 게 재미있었다. 일요일 오후 예배가 끝나면(오전에 예배드리고 오후에 또 갔다) 교회 마당에서 편을 가르고 하는 놀이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고 상을 받기도 했지만 신앙심의 발로는 아니었다. 구구단 외우듯 재미있어서 했다.


저학년이 ‘주기도문’을 외우는 대회에서 고학년은 ‘십계명’을 외웠는데, 내가 고학년이 되니 ‘십계명’ 외우기 대신 ‘성경 퀴즈 대회’를 열었다. 그래서 지금도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은 술술 나오지만 ‘십계명’은 제대로 못 외운다. 이래서 시험이 필요한가 보다. 시험을 봐야 공부를 하고 뇌에 새겨둘 수 있다. 그때 ‘십계명’ 시험(대회)을 보았다면 지금까지 잘 기억할 텐데 아쉽다. 지금 외우면 되지 않느냐고? 지금 외우면 오늘 다 외웠다 해도 일주일 뒤면 ‘뇌에 뭐가 지나갔어?’ 하듯 기억 저장고가 초기화되어 원래 새겨진 만큼밖에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말에는 기억력 저하 문제도 큰 몫을 차지할 것 같다. 날마다 외운다면 기억하겠지만 날마다 ‘십계명’만 외우고 있기에는 나도 김훈 작가의 말처럼 허송세월하느라 좀 바쁘다.

성경 퀴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다른 교회에서 열리는 큰 대회에 몇 명이 함께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거기서였던가, 우리 교회에서 어른들이 모인 큰 예배당에서였던가.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

퀴즈로 성경의 내용뿐 아니라 학년별로 공부할 때 교재로 쓴 책 속의 내용에 관해서도 물었던 모양이다. 긴 교회 의자에 다른 참가자들과 나란히 앉아 있다가 한 종교 개혁자의 이름을 묻는 문제에 손을 들었다. 문제를 낸 선생님이 내게 마이크를 내밀어서 ‘요한 칼빈!’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존 칼빈!’하며 정답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존’이라 하고 선생님이 ‘요한’이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다르게 말했는데 선생님이 잘못 알아들은 것 같아 몸이 움츠러들었다. 2등 상을 받았는데 그 문제는 정답을 맞힌 게 아니라 생각하니 기쁘지도 않았다.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오랫동안 꺼림칙했다.


한참 뒤에야 알았다. 존은 영어식 발음이고 요한은 성경에 나오는 독일식 발음으로 둘은 같은 사람의 이름이라는 걸. 또 그 개혁자는 프랑스인이라 원래 이름은 장 칼뱅이었다는 걸. 세계사 시간에 알았던가, 독어를 배우면서 알았던가. 대회를 진행한 선생님은 내가 요한이라 했어도 존으로 들었거나 존으로 바꿔 말씀하신 것일 테다. 존이나 요한이나 같으니까.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삼 년 묵은(진짜 삼 년은 묵었다) 체증이 내려간 듯 속이 시원했다. 짓눌렸던 양심도 해방되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는 성경 말씀은 역시 진리였다.


나는 노래 부르러 교회에 갔는지 모르겠다. 성경 공부보다, 목사님 설교보다, 기도보다 찬송하는 시간이 좋았다. 앞에서 지휘하고 인도한 남자 선생님은 아주 열정적이었다. 지휘할 때면 얼굴이 새빨개졌다. 초등학생 성가대는 없었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4, 5, 6학년만 모아 성가 연습을 시켰다. 2, 30명 정도 되었을까. 단체로 다른 교회에 가서 찬송한 적도 있고 교회별 찬송가 경연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내가 ‘소프람’을 한다고 해서 언니가 푸하하하, 웃었던 기억이 난다. ‘소프라노’도 교회 학교에서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매일 성가 연습을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드리는 어른 예배 때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겨울이라 저녁에 연습하고 교회 문을 나서면 밖이 캄캄했다. 날마다 그랬지만 하나님이 기특하다고 지켜주셔서인지 아무 일 없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독창하던 언니가 있었다. 목소리가 곱고 정확한 음으로 노래를 참 잘 불렀다. 2년 연속 무대에 섰는데 떨지도 않았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부러웠고 나도 잘 부르고 싶었다.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보다 사람의 목이라는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 제일 대단해 보였다. 바이올린에 명품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목이라는 악기도 명품이 있고 그건 타고나는 것 같다. 그 언니는 좋은 목소리를 타고나서 목소리에 윤기가 있고 고음도 깔끔하게 냈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천사들이 노래하고 기쁜 종 울리어라’ 하며 높은음이 많이 든 노래를 한참 연습하고 나면 목이 아프고 목소리가 변해 있었다. 목 악기가 변변찮은 데다 잘 다룰 줄 몰라서일 테다.


연습 시간에 선생님이 그 언니가 한 목도리를 풀고 하라며 직접 풀어준 일이 생각난다. 풀고 나니 얇은 목도리가 또 있어서 그것도 풀어냈다. 선생님이 마술사처럼 목도리를 하나씩 빼낼 때마다 우리는 웃었다. 그 언니는 일찍 멋에 눈 떴던가? 몹시 추운 날도 아닌데 목도리를 두 개나 목에 칭칭 감고 있어 이상했는데 선생님은 그게 목을 보호해 준다고 했다. 목도리가 목의 겉만 아니라 속도 보호한다는 걸 알았다.


5학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독창 전문 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없었다. 단체 성가 연습을 하러 간 어느 날, 선생님이 나에게 어떤 찬송가를 불러 보라고 했다. 부르고 나니 나더러 크리스마스 이브에 독창을 하라는 게 아닌가. 너무 놀랐다. 부끄러움을 심각하게 많이 타는 내가 어떻게 수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른단 말인가. 또 독창 전문 언니에 비하면 나는 음을 틀리지 않는 정도일 뿐 아주 못 부르는 아이인데 내가 독창을 하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성적, 감정적으로 모두 불가라는 판정을 내려놓고도 그 자리에서 나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선생님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는 아이라서였을까? 선생님 말씀을 거부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러나 어쩌려고? 모르지.

아무리 부를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도대체 선생님은 왜 나에게 그 일을 맡겼을까? 단체로 연습할 때 내 옆에 와서 듣기도 하니 내 목소리나 노래 실력은 잘 알 테고, 지휘하다 눈이 마주쳤을 때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하는 모습은 보았을 테다. 같은 학년의 다른 아이가 더 잘할지도 모르는데 나를 선택함은 한 번도 연습에 빠지지 않는 나의 성실함에 점수를 준 때문일까? 나는 끝내 선생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선생님이 정해 준 찬송가는 잘 아는 곡이었다. 그래도 부르다가 가사가 생각나지 않거나 음정을 틀릴까 봐 틈 날 때마다 불렀다.

단체 연습을 마친 뒤 선생님 앞에서도 몇 번 불렀다. 한 번은 부르고 나자 선생님이 노래는 잘하는데 표정을 좀 밝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너무 굳어 있다고, 나무토막처럼 꼼짝 않고 서서 부르지 말고 자연스럽게 몸을 살짝살짝 움직여 주라고 했다. 아, 그 주문은 독창하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주문이었다. 목석이 내 정체성이었기 때문이다. 밝은 표정을 지으라니, 나름대로 곡 해석을 한 건 아니나 성스러운 예물을 드리는 찬송을 어찌 그리 밝게 부른단 말인가. 진지하고 엄숙한 얼굴로 바쳐야 마땅하지, 하고도 생각했다.

그 전해에 아래 학년 아이가 독창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 아이는 흰 티셔츠에 멜빵이 달린 빨간 주름치마를 입고 토끼 귀가 달린 머리띠를 하고 흥겹게 율동하며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를 불렀다. 귀엽고 깜찍한 모습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여러모로 신경 썼을 그 아이의 엄마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아이처럼 흥겹게 부를 노래가 아니어서인지 밝은 표정이 안 나왔다. 몸을 좀 움직이려고 신경쓰니 노래가 안 됐다. 선생님과 아는 아이들 몇 명 앞에서도 안 되는데 훨씬 많은 사람 앞에서 밝은 표정과 몸동작이 나오기는 그른 것 같았다. 전주를 듣고 1, 2절을 부르고 간주 나오는 동안 기다렸다가 3절을 부르기, 그 순서를 지켜서 부르는 데 집중하느라 얼굴은 밝기는커녕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을 게 분명했다. 선생님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의 목표는 음정이나 박자를 틀리지 않고 끝까지 부르기로 잡았다. 그것이 나의 기도 제목이었다. 밝은 얼굴 짓기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나는 떨려도 목소리가 잘 나와 주기만 바랐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오후에 단체로 연습하고 집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다시 교회로 갔다. 진한 색 바지에 연분홍 털실로 짜인 스웨터를 입었다. 왼쪽 가슴에 같은 실로 된 장미꽃 한 송이가 달려있었다. 크리스마스 색은 아니지만 내 옷 중에서 가장 예쁜 옷이었다.


간단한 예배를 마친 뒤 부서별 공연이 시작되었다. 차례가 다가올수록 가슴은 빠르게 두근대고 목이 꽉 잠기는 듯했다. 어디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내 차례가 와서 나를 꽉 붙들었다. 앞으로 나갈 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걸어가는 듯 현실감이 없었다.

넓고 높은 단 위에 서서 보니 많은 사람이 나를 향해 앉아 있는데 그 모습이 흐릿하여 마치 바다 같았다. 그 바다에 빠지지 않으려고 의지할 것을 찾았다. 눈을 드니 뒤편 벽에 걸린 둥그런 시계가 보였다. 전주가 나오는 동안 그 시계만 쳐다보고 서 있었다. 지푸라기를 잡듯 시곗바늘을 붙들고 찬송을 시작했다.

“귀중한 보배함을 주 앞에 드리고...”

다행히 목소리가 떨려 나오지는 않았다. 몸도 떨지 않았다. 얼어 있었을 뿐. 밝은 표정과 가벼운 움직임은 꿈도 꾸지 못했다. 부르는 데 익숙해지며 언뜻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지만 내 몸은 부동자세를 견지했다. 군인이라도 그렇게 딱딱하게 군가를 부르지는 않았을 테다. 그러나 나는 노래가 내 입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거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점점 평소처럼 부르게 되었다.

1, 2절을 마치고 간주가 나올 때야 객석이 또렷하게 보였는데 교회에 다니지 않는 우리 식구는 물론 아는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르는 많은 사람 앞에서 홀로 노래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새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런데 간주가 끝나자 다시 노래가 제대로 나왔으니 우리 몸에 자동수행 기능이라는 게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음정이나 박자를 틀린 데 없이 무사히 찬송을 끝냈다. 마무리 인사를 어정쩡하게 해서 손뼉 칠 순간을 놓쳐서인지 박수 소리는 별로 크지 않았다. 환호할 만한 노래는 아니지만 전혀 은혜롭지 않았던가? 청중에게 별 감동을 주지 못했을 나의 데뷔 무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독창 데뷔 무대를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를 통해 사람들 앞에 서는 경험을 교회 학교에서 제법 많이 했다. 잘하는 한둘이 아니라 모두를 참가하게 하고 칭찬을 많이 해주는 교회와 학교는 달라서 그로 인해 학교에서 발표력이 크게 향상되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도움 되지 않았을까?


교회 학교가 나를 성직자나 열혈 신자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여러 활동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책갈피 속에 간직된 그 추억을 꺼내면 나는 다시 어린 학생이 되어 예배당이 있던 골목 안으로 타박타박 걸어간다. 길 가운데 과거로 들어가는 문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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