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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의 사랑

by 가을산

금이는 정력이 좋았다. 보는 영화마다 거기 나온 배우를 좋아했고 보는 책마다 주인공 남자를 좋아했다. 학생 신분으로는 함부로 영화관에 갈 수 없어 영화는 주로 TV로 보았다. 토요일에는 ‘주말의 명화’, 일요일에는 ‘명화 극장’. 다른 학교 다닌 친구한테 들은 얘기로는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가면 ‘미성년자 입장 불가’ 영화라도 극장에서 아무 말 않고 들여보내 준다고 했다. 고3 때 짝꿍인 금이는 몰랐다. 알았다 해도 영화관에 자주 갈 경제적 여유도, 용기도 없었을 테다.

우리 학교에서 한 정류장만 가면 시내라고 불리는 중심가였다. 선생님들이 주말마다 시내 극장가를 돌고 있어 거기서 적발되면 엄벌에 처한다고 겁박했다.

학생 주임은 학교의 최고 권력자였다. 조회 때마다 일장 연설을 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뒤에 오는 자기 차례를 십분 활용해서 십분 이상 말했다. 시내 한복판에 학교가 있으니 우리가 잘못하면 학교 담 밖으로 소리가 나가 창피한 일이라며 스피커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자신의 소리를 담 밖으로 내보냈다. 매번 ‘담 밖으로 소리가...’ 소리를 했지만 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그런 식으로 자신의 위세를 떨쳐 보이려는 것 같았다.

기억에 남는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 교장 선생님의 훈화도 담장을 넘었겠지만 그건 학생 주임의 거친 언사에 비하면 문학이었다. 듣는 사람은 수필을 낭독하는 줄 알았을지 모른다.

언제나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던 학생 주임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하는 아이를 보면 어느 중학교를 나왔느냐고 물었다. 한때 이름난 학교면 그 학교를 나왔는데 그러면 되느냐고 하고, 그런 학교가 아니면 ‘음, 역시. 이제 명문 학교에 왔으니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고 했다. 다 평준화되었는데 무슨 차이가 있다고, 잘못하면 어느 학교 나왔는지 물어볼 거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주말이 돌아오면 학교에서는 우릴 보고 시내 가지 마라, 시외 가지 마라, 했다. 그럼 어디로 가라고?

시내도, 시외도 아닌 곳에 속할 집에서 주말을 보내고 학교에 가면 옆에 앉은 금이가 전날 방영된 어떤 영화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꿈꾸는 듯한 얼굴로 거기 나온 주인공 남자가 너무 멋있었다고 말했다. 금이는 일주일 내내 그 남자 얘기를 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 같았다. 그러다 그다음 주가 되어 새로운 영화를 보고 오면 또 다른 남자를 멋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남자 얘기를 더 많이 하지만 먼젓번 남자를 버린 건 아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새 남자를 멋있다고 하는 금이에게 ‘넌 참 정력도 좋아. ㅇㅇ는?’ 하면 ‘ㅇㅇ? 그 사람도 멋있지.’ 했다. 레트 버틀러, 험프리 보가트, 로버트 레드퍼드, 이태백, 헤밍웨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존하든 허구의 인물이든 금이가 반한 사람의 목록은 나날이 길어졌다. 참으로 정력이 넘치는 아이였다.


‘명화 극장’ 이 방영되기 전 화면 아래, 한쪽 구석에 등장해 이 영화를 놓치면 후회한다느니,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영화라고 소개하던 영화 평론가, 정영일이 생각난다. ‘애수’를 두고도 놓쳐서는 안 될 영화라고 했었다. 그 영화는 정말 놓쳐서는 안 될 영화 맞다. 끝부분, 워털루 브리지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연인을 다시 보게 된 비비안 리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반쯤 얼이 나간 얼굴에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커다랗게 치켜뜬 눈. 이루 말할 수 없는 표정을 담은 검은 눈동자(흑백 영화였다)를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금이에게는 모든 영화가 놓쳐서는 안 될 영화였다. ‘초원의 빛’을 보다가 너무 졸려잤다고 했더니 어떻게 잘 수가 있느냐며 감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간을 보듯 했다. 나탈리 우드가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희미해진다면...’ 하며 시를 외우고 버드가 어떻게 했을 때 자신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 하면서.

학생 때는 항상 잠이 부족했다. 밤 10시도 되기 전에 졸렸다. 10시까지 기다리기도 어려운데 12시 넘어까지 하는 영화를 졸지 않고 보기는 몹시 힘들었다. 아주 흥미진진한 영화가 아니면 보다가 조는 경우가 허다했다. 금이한테 시달리지 않으려면 끝까지 잘 봐야 하는데 몰려오는 수마를 감당하기에 내 눈꺼풀은 너무 미약했다.

금이는 고등학교 내내 같은 반이었지만 각자 노는 물이 달랐던지 가깝지는 않았다. 1, 2학년 때 금이는 교내 문학반 회원으로서 축제 기간이면 시화전이며 문학 관련 행사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글 씁네, 하며 그렇게 몰려다니는 문학반 애들을 좋지 않게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3학년에 올라와 짝이 되어서야 금이를 제대로 알았다. 금이는 성격이 밝고 곧은 아이였다. 선생님 앞에서 얼음이 되는 나와는 달리 선생님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아이였다. 그런 점이 좋았다. 예쁘기도 했다. 아이들이 재미로 돌린 설문 조사에서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을 묻는 항목에 ‘크고 초롱초롱한 두 눈’ 이라 쓴 대로 굵게 쌍꺼풀진 눈이 특히 예뻤다.

3학년 때는 특별 활동 시간이 시간표에 없었다. 문학회 모임이 없어도 금이는 혼자 글을 쓰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도 무언가를 쓰고 있길래 뭘 쓰느냐고 물어보니 소설이라고 했다. 보여줄 수 있느냐고 하자 조금 망설이더니 공책 낱장 한 장을 내밀었다. 소설의 첫 대목인 듯했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주인공으로, 기숙사 입소와 성적순으로 학급이 편성된 데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기숙사에 입소하던 날 아무개가 ‘엄마에게 표독스러운 얼굴로’ 무슨 말을 했다는 구절이 기억에 남아있다.


금이는 1, 2학년 때 많이 놀았다며 3학년 때는 열심히 공부하려고 했다. 공부를 더 많이 할 방법을 찾아 이모저모 궁리하고 나에게도 알려주었다. 야간 자습을 마치고 집에 갔을 때 씻지 않고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책상 앞에 앉으면 공부가 잘된다고 했다. 나도 해보려고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집이라는 걸 인지한 나의 뇌는 개운하게 씻어야 정신이 맑아질 거라고, 교복이 불편하니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을 거라고 지시했다. 그런 것 같아 그렇게 했다. 그러자 개운하고 편안해서 잘 잤다. 눈 떠보니 아침이었다.


금이는 갱지로 된 스프링 연습장에 볼펜으로 쓰면서 공부했다. 하루는 1주일 만에 연습장 한 권을 다 썼다고 자랑했다. 어느 날은 한 달 만에 볼펜 한 자루를 다 썼다며 매우 뿌듯해했다. 공부한 양이 눈으로 보이면 정말 뿌듯할 것 같아 나도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원래 수학 말고는 쓰면서 공부하지 않는다. 또 손에 볼펜이 묻는 게 싫어 연필을 잡는다. 샤프 연필을 거꾸로 들고 매끈한 뚜껑 부분으로 책이나 공책에 밑줄을 그으며 마음에 새긴다. 연습장에는 외운 걸 확인할 때만 써본다. 수학 문제도 연필로 풀 때 생각이 더 잘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도형에 마음껏 줄을 그어도 볼펜만큼 지저분해지지 않아 좋았다.

종이에 글을 쓸 때도 연필로 쓸 때 더 마음이 편하고 자유롭게 써지는 듯하니 나는 연필 체질인 게 확실하다.

연습장의 장수를 늘리려고 수학만은 풀이 과정을 자세히 썼다. 다 쓴 연습장이 쌓여갈수록 얼마나 뿌듯하고 자신이 대견하게 여겨질까 싶은데 내 방식으로는 아무리 해도 연습장이 술술 넘어가지 않았다. 볼펜도 닳지 않았다. 한 해 동안 금이는 볼펜을 몇 자루나 썼을 텐데 나는 두 자루나 썼을까? 우리 집 경제에는 퍽 도움이 되었겠다.

금이네 집은 목욕탕을 했다. 대중목욕탕도 돈이 없어 마음껏 가지 못하던 때, 금이의 얼굴이 뽀얬던 건 그 덕분일까? 엄마를 닮아서인지도 모른다. 2학년 때 1주일간 생활관에 입소하여 여러 가지 예절 교육을 받은 뒤 마지막 날에 어머니들을 초대하여 한복을 입고 밥상을 올렸다. 그때 본 금이 엄마도 얼굴이 뽀얬다. 그날 우리 엄마와 금이 엄마만 한복을 입지 않아 서로 위안이 되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여름 방학 때 금이가 불러서 버스로 한참 갔던 금이네 집은 아파트였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은 처음 가보았다. 널찍하고 층이 높아 전망이 좋았고 맞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다른 식구는 없었고 금이가 과일과 함께 결명자차를 주었다. 처음으로 먹어본 결명자차에서는 행주 빤 것 같은 맛이 났다. 금이는 한 번씩 목욕탕 접수도 본다고 했다.

시험이 몇 달 남지 않았는데 더워서 공부가 안된다는 둥 고3의 고달픔을 토로하고 애환을 나눌 때 창밖에서 매미 우는 소리가 여름 바다의 파도 소리처럼 들려왔다.

금이는 놀려고 대학 간다고 말했다. 간판 따러, 시집 잘 가려고 간다고도 했다. 선생님도 부모도 여자인 우리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적당한 대학 나와서 잠시 직장을 다니거나 신부 수업하며 조신하게 있다가 적당한 신랑감을 만나 적당한 때에 시집가는 것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전부였다. 어쩌다 고3이 되어 ‘가고 보자, 대학’ 에 내몰린 우리 대부분에게도 학문에 대한 열정이나 미래에 대한 거창한 포부 같은 건 없었다.

금이는 1, 2학년 때 너무 많이 놀아 내신도 형편없고 해서 대학은 아무 과라도 성적 되는대로 가겠다고 했다. 대신 무슨 과를 가든 글은 계속 쓸 거라고 했다.

고향을 떠나온 뒤 대학 1학년 여름 방학에 금이를 한 번 보고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 한두 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금이는 여전히 영화를 좋아해서 ‘셰인’에서 알란 랏드가 말 타고 떠나는 장면이 너무 멋있었다고 편지에 적었다.


대학 졸업반 겨울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갔다가 한 백화점에서 금이를 마주쳤다. 무척 반가웠는데 금이는 곧 결혼할 예정이며 결혼해서는 일본으로 갈 거라고 말했다. 깜짝 놀랐다. 고등학생 때도 빨리 시집가고 싶다고는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가다니. 수많은 영화에서 본 멋진 남자들로 금이의 눈은 절대 낮지 않을 텐데 ‘너무 멋진’ 상대를 일찍 만났을까? 눈이 맞으면 바로 사랑에 빠지는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금이도 그랬을까?

결혼하자마자 일본에 가는 건 신랑감의 사정 때문이라고 했던가? 서로 일행이 있었는지 제대로 얘기도 못하고 나뉘었다. 또래의 결혼 소식은 처음이라 갖춰야 할 예절을 몰랐다. 결혼식 날짜에 고향에 있지 못한다는 걸 알고는 장소도 물어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어, 하다가 헤어져 축하한다는 말도 못 한 것 같다. 축하할 일인 줄 몰랐던가? 수많은 결혼 사례를 보고 난 지금은 결혼이 무조건 축하할 일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때 금이에게는 했으면 좋았을걸. 어쨌든 결혼은 예삿일이 아니니까.

영문과에 간 금이, 다짐대로 계속 글을 썼을까? 지금도 쓰고 있을까? 연습장에 수학 문제를 풀 때처럼 골똘히 글 쓰는 금이의 모습을 그려본다. 언제 어디서든 한 번 더 마주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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