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다이 해요. 단다이”
자그마한 키에 안경을 낀, 40대 중후반의 남자 담임 선생님이 자주 한 말이었다. 무슨 일이든 단단히 하라는 말이지만 무엇보다 공부를 그렇게 하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고3이고 지상 과제가 공부였으니까. 수학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단단하고 깐깐했다.
‘단다이’보다 강렬하게 남은 말은 ‘책은 백해무익이다.’이다. 점심시간에 소설책을 읽는 아이를 보자 우리를 향해 한 말이었다. 책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더러 보았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어떤 책은 숭배하기까지 했던 나는 감히 책을 저렇게 말할 수가, 하고 무슨 불경죄를 저지른 사람을 보듯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고1 때 수학 선생님도 요즘 우리나라에 책 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초등학생밖에 없다며 책 읽는 아이에게 뭐라 했지만 담임 선생님은 아예 책의 존재 이유를 부정했다. 백 가지 해로움이 있고 이로움은 하나도 없다면 없어져야 마땅할 물건이 아닌가.
인류 수천 년의 지혜가 집대성된 고전을 비롯한 책을 깡그리 무시하여 해롭기만 하니 읽지 말라는 게 간접적으로나마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고 사고를 넓히며 미래를 도모해야 할 청소년들에게 교육자로서 할 소리인가. 책이 백해무익이면 왜 책을 보며 공부하라 하는가? 선생님이 금하는 책이 교과서나 자습서 외의 책이라는 건 알지만 교과서는 책 아닌가? 자신은 평생 다른 책하고는 담쌓고 수학책만 보았더라도 그 수학책은 책 아닌가?
한시적으로, 올해는 수험서 외의 독서는 뒤로 미루는 게 좋겠다고 하면 누가 반감을 갖겠는가. 그런데 책이란 이 세계에서 사라져야 하는 백해무익한 물건이라고 수학 공식처럼 선포했으니, 꼬부랑글자나 숫자만 들여다보거나 덮어놓고 암기하기 진저리나 잠시 다른 책을 펴든 학생들로서는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그다음부터 우리는 누가 교과서 아닌 책을 보고 있으면 책은 백해무익이라잖아, 하며 웃었다. 대입 시험을 보고 난 뒤 학교 도서관에 가자는 친구에게도 ‘백해무익인 책을 뭐하러 보러 가?’ 했었다. 지금도 그 친구와 이야기하다 그 말을 떠올리게 되면 한바탕 담임 선생님을 성토하곤 한다.
수업 시간에 쏟아지는 졸음을 간신히 참고 버티다가 쉬는 시간이 되어 일제히 책상에 엎드려 잘 때가 있다. 그때의 잠은 짧은 시간이지만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 때 갑자기 들이닥쳐 소리 지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담임 선생님이다. 소리 지르는 말이 무언고 하니 ‘여기가 여관방이냐!’ 였다. 그 말이 참으로 상스럽게 들렸다.
이른 아침부터 밤중까지 학교에 붙들려 종일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이 그렇게라도 잠과 에너지를 보충하면 좋은 거지. 하루 10~15분 정도의 낮잠은 몸에 좋다고도 하는데 공부 시간도 아닌 쉬는 시간에 잠을 좀 잤기로서니 순수를 대표할 여학생들에게 여관방이냐니, 책이 백해무익이라 여기며 사는 사람다운 언사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3은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야간 자습을 했다. 말이 자습이지 강제 공부하기였다. 도시락을 두 개씩 가지고 다녔다. 처음에는 점심시간, 저녁 시간을 지켜서 밥을 먹었지만 나중에는 2, 3교시 후에 도시락 하나, 6, 7교시 후에 또 하나를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침을 못 먹고 왔는지 1교시 마치자마자 도시락을 꺼내어 먹는 아이도 있었다. 각자 자기가 먹고 싶을 때 먹으니 두 개의 도시락이 다 없어질 때까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는 시간마다 반찬 냄새가 나지 않을 때가 없었다.
무용 선생님이 교실에서 이론 수업을 한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쉬는 시간에 몇 사람이 밥을 먹었다.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은 들어서자마자 마구 헛구역질을 했다. 자신은 비위가 약하다며 한 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쪽저쪽 창문을 가리키며 다 열라고 했다. 찬 바람이 들이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김치 냄새 등의 반찬 냄새가 싫기는 하겠지만 같은 한국인인데 그렇게도 역했을까? 그 후로 무용 시간 전의 쉬는 시간에는 도시락을 까먹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의 위장은 허기져도 선생님의 위장은 편안해졌으니 선생님의 승리였다.
점심시간에 집중해서 공부하겠다는 생각으로 쉬는 시간에 미리 밥을 먹기도 했다. 일견 그게 좋은 생각 같기도 했다. 쉬는 시간 10분 만에 밥을 먹어치우면 50분간의 뭉텅이 시간에 실컷 공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 기껏 밥부터 먹고 공부에 심취할 만반의 준비를 다 했는데 아뿔싸, 잠이, 잠이 몰려온다. 식곤증이 그제야 온 건지. 자꾸 내려 덮이는 눈꺼풀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결국 항복, 하고 양팔을 올리고 책상에 엎드린다. 공부가 아닌 잠에 깊이 심취한다. 쉬는 시간보다 몇 배나 긴 알짜배기 점심시간에 세상모르고 잔다. 그럴 때 여지없이 나타나는 사람, 또 담임 선생님이다. 이번에도 커다란 목소리로 외친다.
“여기가 여관방이냐!”
차라리 도시락을 제때, 점심시간에 먹었다면 먹고 난 뒤의 20여 분 정도는 공부할 시간이 났을 텐데 어쩌랴.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새날에는 또 새로운 계획으로 쉬는 시간이면 서둘러 도시락을 푸는 우리였다.
야간 자습할 때 선생님은 자는 애를 발견하면 소리 없이 다가가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나도 한 개 먹었다. 원래는 내 짝이 먼저 졸았다. 너무 졸린다며 자꾸 조는 모습을 보니 나도 졸려서 잠에 빠져들었나 보다. 이마가 따끔해서 눈을 떠보니 선생님이 내 앞에 서 있고 짝은 멀쩡했다. 선생님이 다가올 때 미리 말해주지 않은 짝이 원망스러웠다. 공부가 잘돼서였던가? 짝은 다른 애들이 다 자는데 자기만 공부하면 기분이 좋아서 공부가 더 잘 된다고 했다. 나는 반대였다. 졸리지 않았어도 남이 자는 걸 보면 덩달아 졸렸다. 어떻게 그렇게 금방 따라 자느냐고 내가 꿀밤 맞고 난 뒤 짝도 말했다. 나는 오기도 줏대도 없는 인간이었나 보다.
그런 나에게 다 같이 공부하는 야간 자습은 유익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나는 도서관 체질이 아니고 혼자 공부하는 형이라서다. 아이들의 여러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자잘한 소음이 귀에 들어오면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유난히 집중하기 힘든 날에는 억지로 앉아있기는 해도 그저 시간을 날리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야간 자습 시간이 없었다면 더 좋았을는지 모른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냥 공부하기 싫은 거였다.
2학기부터였던가?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저녁에 우리가 자습할 때 대학원에 가셨다. 자신이 없더라도 단다이 하라고 이르고서. 미리 부탁해 놓았는지 가끔 옆 반 선생님이 슬쩍 들여다보기도 했지만 그런 날 우리 반은 해방구가 되었다.
고교 야구가 인기 있던 때여서 누군가가 작은 라디오를 가지고 와 중계방송을 틀어 놓기도 했다. 나는 야구 규칙을 하나도 몰랐지만 다른 아이들은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말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며 즐거워했다. 홈런이라도 터지면 자신들이 대학 입시에 홈런을 터뜨리기라도 한 것처럼 와~ 소리를 지르다가 옆 반에 들릴까, 황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돈을 거둬 학교 앞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먹은 적도 있다. 말끝마다 고3이, 고3은, 하며 공부 외에 다른 욕구를 가지면 안 되는 존재로 취급받다가 그런 날이면 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자니 눈썹 같은 달이 교실 안을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어느 날엔 별이 총총하여 누군가가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고 노래를 시작하자 다같이 맞추어 합창을 했다. 노래가 끝나 일순 조용해지자 귀뚜라미가 제 차례라는 듯 귀뚤 귀뚤, 맑고 고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소풍날, 장기 자랑 시간에 선생님들도 앞에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미스터 단다이’라고 소개받은 우리 선생님은 어디서 났는지 여러 가닥으로 가늘고 길게 찢어지고 치렁치렁한 천을 허리에 두르고 막춤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춤을 추면서 가지 마오 어쩌고 하는 노래를 불렀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다른 반 아이들까지 앞에 앉은 애의 등을 두드려가며 웃었다.
겨울 방학 중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난 며칠 뒤에 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너 어떻게 됐냐, 고. 안 됐다고 하니 바로 너는 내 말을 안 들어 떨어졌다, 고 했다. 입학 지원서 쓰던 날 마지막에는 소신껏 하라고 했던 사람이다. 난생처음 겪은 큰 실패로 참담하고 암울해하고 있을 아이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합격 실적을 올리지 못한 점만 분한 모양이었다. 그 말만 거듭했지 위로의 말 같은 건 일언반구도 비치지 않았다. 기회가 또 온다든가 다음에는 잘 될 거라는 식의 상투적인 덕담 한 푼 없이 전화를 끊었다.
담배에나 붙일 법한 ‘백해무익’ 앞에 ‘책’을 두는 사람이니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아니 그렇게 말할 줄 어느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다. 수학 선생님이니 수학 용어로 말하자면 선생님이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줄 ‘확률’이 0임은 잘 알고 있었다. ‘딸이 자그마치 셋이나 있다’며 ‘자는 딸도 다시 보자’ 한댔는데 그 딸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며 책을 못 보게 했을지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