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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좋아

by 가을산

그 친구는 철학을 좋아했다. 외부의 철학 동아리에 들었고 대학도 철학과에 갈 거라고 했다. 나도 철학에 관심이 없지 않아 틈만 나면 그 애와 철학적 토론을 했다, 지만 겨우 고3이 무슨 대단한 철학적 토론을 했으랴. 니체와 헤겔을 논한 게 아니다. 너 자신을 알라, 는 소크라테스의 말도 네 성적이 현재 차지하고 있는 지점을 똑똑히 알라는 뜻이라고 이해했지 네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알라는 뜻인 줄 알지 못했다. 그저 멋진 말이 좋았던 건지 모른다. ‘철학은 말의 유희’라는 말마저 철학적으로 들렸다.

공평한 기회를 주려고 자유석 제도가 시행되자 등교 시간이 빠르지 않았던 나는 뒤로 밀려났다. 아이들은 중간과 앞자리를 선호했다. 처음에는 앞에 앉다가 뒤에 앉으니 산만하여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적응이 되자 뒷자리가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 좋았다. 자리를 두고 신경전을 벌일 필요도 없어 계속 뒤쪽으로 갔다.

나와 같은 유형이었는지 그 친구는 내 뒤에 잘 앉았다. 그렇게 그 친구와 가까워졌다. 자유석은 차츰 고정석이 되어갔다. 아이들은 일찍 등교해도 다른 아이가 앉던 자리를 뺏지 않고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종종 뒤에 앉은 그 애 쪽으로 돌아앉아 읽은 책에 대해, 고매한 철학자가 한 말에 대해, 특별한 감동을 준 사람이나 인생에 관해 이야기했다. 돈이나 외모나 시험 점수 같은 건 형이하학적인 걸로 치부하고 뛰어난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다. 그 애는 ‘지적 오만’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책은 백해무익이라 외치는 담임 선생님 때문은 아니지만 명색이 고3이라 수험서 외의 책을 많이 읽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벌인 토론의 대상은 주로 고3이 되기 전에 읽은 책이었다.

중학교 땐가 읽은 <데미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나 했을까? 제목에 끌려 읽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Mitte des Lebens)는 제2 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운 덕분에 원어 제목을 읽을 수 있어서 기뻤다. 책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데 친구가 주인공 니나처럼 아이를 함부로 낳는 여자가 싫다고 한 게 기억난다. 그건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반 아이들은 참 희한한 아이들이었다. 1학년 때는 학교만 오면 입 다물고 말하지 말라는 이상한 담임 선생님을 만났는데 2학년 때는 아이들이 이상했다. 담임이 그리 압박하지도 않는데 알아서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다. 공부 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도 매우 조용했다.

쉬는 시간에 내가 짝이랑 무슨 말을 하면 한 마디는 참아주었지만 두 마디만 하면 옆에서 ‘야, 조용히 하자’ 했다. 점심시간에 뭔가 이야기를 좀 할라치면 뒤에서 등을 쿡 찌르며 시끄럽다고 했다. 고개를 들어 보면 사방에서 째려보고 있었다. 뭐 이런 애들이 다 있나 싶었다.

선생님이 이상할 때는 선생님이 없을 때 아이들끼리 연대하여 선생님 흉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상할 때는 내내 그들과 함께 있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 아이들은 공부밖에 모르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우리 반에는 교내 동아리의 회장을 맡은 애들이 수두룩했다. 그걸 안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은 우리 학교의 중심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놀 때는 놀고 공부할 때는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인데 내가 이상한 애였던가? 이야기하고 싶으면 손잡고 복도로 나가거나 뒷동산에 올라가면 되지 남들 공부하는 교실에 앉아서 하려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환경이 몹시 답답하고 괴로웠다.

3학년 때 한 반으로 만난 아이들은 보통 아이, 내 기준으로는 정상인 아이들이었다. 고3이지만 틈만 나면 놀 궁리를 하고 황진이처럼 ‘쉬어간들 어떠리’의 경지에 있는 아이들. 누군가와 이야기한다고 해서 등을 찌르고 눈을 흘겨보는 아이가 없었기에 나는 마음 맞는 친구와 실컷 이야기할 수 있었다.


3학년 때 급우들은 공부는 각자 알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옆에서 굿을 해도 책을 들여다봤다. 하기 싫은 사람은 절간처럼 조용해도 엎드려 잤다.

대부분 공부하느라 조용한 점심시간에 몇 명의 아이들은 교실 뒤에 걸린 거울 앞에 서 있다. 아침에 땋고 온 머리를 풀고 새로 땋거나 애교머리가 이마 위에 적당한 비율로 적당한 위치에 자리 잡도록 수없이 머리칼을 매만지고 맵시를 본다. 품평도 하며 시끌시끌 웃고 떠드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신경질 내는 아이는 없다. 한쪽에서 몇몇은 간식을 사 먹으려고 종이 위에서 ‘사다리 타기’를 한다. 점심시간이 끝난다는 신호인 ‘뮤직 박스 댄서’ 가 흘러나올 때까지 노는 아이와 공부하는 아이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이 없다. 비둘기도 창밖에서 평화롭게 놀고 있다.


선생님의 감독이 없는 야간 자습 시간. 공부하는 아이는 누군가 집에서 가져온 라디오의 야구 중계방송을 들으며 떠드는 아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를 외우고, 지도에서 인도의 북서부 지역을 찾아 세계적인 면화의 산지를 확인했다. 가끔 환호하는 아이들을 보며 미소도 지으면서. 내 짝처럼 남이 노는데 공부하니 기분이 좋아 공부가 더 잘 되어서였는지 모른다. 그런 때 나는 한 번씩 뒤에 앉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와 이야기 나눔으로써 고3을 견딜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입만 열면 공부, 공부, 하는 게 너무 지겨웠다. 온종일 상체를 구부리고 공부하는 아이들의 등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혔다. 그때 그 친구와 공부 외의 이야기를 하면 숨통이 트였다. 대체로 말이 없다는 평을 듣는 나인데 그 애하고는 참 말을 많이 했다. 마치 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그러고 나면 속이 후련했다.

그 애는 쓰면서 말하는 버릇이 있어 한참 이야기하고 나면 연습장 종이가 새까매져 있었다. 그런 종이가 몇 장씩 나오기도 했는데 종이의 양은 우리가 이야기한 시간과 비례했다. 그 시간을 공부에 매진했다면 대입 시험에서 더 나은 점수를 얻었을 거라 말하곤 했다. 그럼 더 나은 인생도 되었을까?

중3 때부터 고 1까지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만화 <캔디>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 친구는 보지 않았다고 했다. ‘지적 오만’의 자세를 드높이는 데 도움 될 만한 작품은 아니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 없는 게 아쉬웠다. 이처럼 그 친구와 나는 같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았다. 남자 취향이 달라서 다행이라 말하기도 했다.

선생님을 좋아한 아이가 있어 휴일에 밖에서 두 사람이 따로 만난 일로 학교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앨범을 보다가 왜 수업도 하지 않는 세계사 선생님이 이과반 담임인가, 이상히 여기다 그 사건이 떠올랐다. 제과점에서 선생님이 한 여학생과 빵을 먹는 장면을 어떤 아이 엄마가 보고 선생님을 교장실도 아닌 교육청에 신고했다고 한다. 3학년 아이와 담임 선생님이었다.

2학년 담임인 세계사 선생님과 담임을 맞바꾸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선생님이 순진하고 남학교에만 있어서 여학생을 다룰 줄 몰랐다는 평도 들렸다. 졸업 앨범에는 있지만 선생님은 이듬해 다른 학교로 전근 가셨다. 그 아이는 앨범에 없다고 했다.

사건의 주역인 국사 선생님은 40대 중반쯤 되었을 텐데 역사의식도 있고 깨어있는 사람 같았다. 가르치는 방식도 여느 선생님과 달라서 무엇이든 정확히 알고 넘어가게 했다. 각간 위홍과 대구 화상의 향가집 편찬, ‘삼대목’, 식으로 중심 낱말만 외우던 우리에게 대구와 화상 중 무엇이 사람 이름이냐고 물었던 게 생각난다. 대구가 이름이라고 했다. 조선 건국과 왕자의 난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했던 기억도 난다. 잘 알고 있는 역사라도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선생님의 외모는 험상궂다면 험상궂다고도 할 수 있는데 친구는 남자답다고 했다. 친구도 그 선생님을 아주 좋아했다. 밖에서 선생님을 만난 아이도 그런 남자다움에 매력을 느꼈을 테지. 내 취향은 아니었다. 일단 외모에서. 분위기도 아니었다. 남자다운 건 행동으로 보여주고 외모는 잘 생기고 지적인 분위기가 나는 사람이 좋았다. 그래서 비슷하다고 우기며 다른 과목 선생님을 좋아하기도 했는데 친구는 내 눈이 잘못되었다며 말렸다. 말릴 거나 있나, 유부남인데.


친구는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어딘가 국사 선생님과 비슷한 남자와 결혼했다. 나는 잘생긴 외모에 지적인 분위기가 나는 남자와 결혼하지 못했지만.

고3이라는 신분의 제약으로 우리는 양껏 얘기할 수 없었다. 그 친구와 이야기할 때면 훔친 시간을 안고 내달리는데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 같았다. 어서 입시가 끝나 원 없이 책도 보고 토론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자 패배감과 절망감에 빠져 책도 보고 싶지 않았다. 토론할 기분도 나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어도 어쩐지 공허했다. 보이지 않는 철학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공부할 시간을 쪼개어 숨죽여 얘기하던 절실한 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렇게 들먹이던 철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던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신봉한 사람으로서 그때야말로 더 책을 읽고 생각해야 했는데. 부처님조차 인생이 고해라고 하셨으니 나 같은 중생에게 생이 괴로운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을.


책장에서 <플라톤의 대화>를 꺼내본다. 누렇게 된 책을 펼치니 교실 한 귀퉁이에 섬을 만들어 철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철학을 논하고 열렬히 대화하던 두 아이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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