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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바라기

by 가을산

고2 때, 수열과 극한 부분을 가르쳐서 리미트 선생님이라 불렀던 선생님은 코미디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재미있는 분이었다. 마흔이 넘은 남자 선생님의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목소리에 한 시간에도 여러 번 웃었다. 수학 공부하는데 뭐 그리 우스운 게 있을까 싶겠지만 그 선생님과 함께라면 수학 문제를 푸는 데도 웃음이 나왔다. 약간 벗어진 머리에 키가 훌쩍 크고 호리호리한 몸매는 희극 영화에 나온 외국 배우를 닮기도 했다. 어쩌면 선생님도 그런 희극 배우를 꿈꾸었을까?


‘마이너~스괄호!’는 마이너스 뒤에는 반드시 괄호(()를 하라는 뜻으로 부호 때문에 일어나는 실수를 없애려고 선생님이 고안해낸 말이었다. ‘스괄호’를 붙여서 한 번에 발음해야 한다. 선생님은 문제를 풀다 마이너스만 나오면 한껏 목청을 높여 ‘마이너~’라고 부르고 나서 빠르게 ‘스괄호!’를 외치며 괄호를 쳤다. 우리도 선생님의 목소리에 맞춰 힘있게 ‘스괄호!’ 하고 웃었다.


‘...... 수렴하는가?’로 끝나는 문제는 다 풀고 나서 선생님이 다시 문제를 읽는다. ‘수렴하는가?’라는 질문에 ‘천마네이션!’이라 하고는 칠판의 답 쓰는 자리에 한 칸을 띄우고 ‘산’을 먼저 쓰면서 산, 이라 하고 띄워놓은 자리에 ‘발’을 쓰며 발, 하고, ‘산발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렴’의 반대는 ‘발산’이지만 재미있으라고 거꾸로 산발한다고 한 것이다.

처음에는 산발한다는 말에 많이 웃었는데 여러 번 산발하니 산발도 일상적인 일이 되어 처음만큼은 웃지 않게 되었다. 수렴 아니면 당연히 산발인 수학 문제가 그리 흥미롭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도 선생님은 자주 산발했다.

‘황진이 법’도 있었다. 황진이의 시조 중 ‘쉬어간들 어떠리’에서 착안한 법이다. 계산할 때 반을 나눠 앞부분을 먼저 계산한 뒤에 (쉬고), 나머지 부분을 계산하라는 것인데 정확히 언제 황진이 법을 썼는지는 모르겠다. 선생님이 ‘황진이 법! 쉬어간들 어떠리.’ 하던 빠른 말투만 기억에 남아있다. 이게 문제였다. 황진이의 시구에서 나온 법인 줄은 알지만 그게 뭔지 모른다는 것. 어떻게 해서 산발하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것.


선생님은 교단에서 팔짝 뛰며 왼쪽, 오른쪽으로 한 발짝씩 왔다 갔다 하기도 했는데 그건 또 무엇에 대한 설명이었던가? +,-,부호의 문제였나? 수학이란 과목에 워낙 흥미 없어 하는 여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공부하기를 바란 선생님의 헌신은 눈물겨웠다. 그러나 선생님을 보며 웃고 재미있어하기는 했지만 그게 수학이란 과목에 대한 흥미를 확 높이거나 수학 성적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지 못했음이 선생님의 아픔이자 우리의 슬픔이었다.


어떤 과목에서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로 학교 생활은 즐겁거나 괴롭거나 했다. 담임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고 학과 선생님이 어떤 분이냐에 따라서도 과목 점수가 오르락내리락하곤 했다.


중2 때는 수학 선생님이 부족해 가정 선생님 중 한 분이 수학을 가르쳤다. 신설 사립 학교라 인건비를 절약할 방편이었는지 모른다. 1학년 때 가정을 가르쳤던 분이 2학년 때는 수학을 가르치니 우리도 헷갈렸다. 가정 선생님이라 불러야 할지 수학 선생님이라 불러야 할지.


의외로 그 선생님은 수학을 매우 잘 가르치셨다. 가정 선생님보다 수학 선생님으로 더 어울렸다. 선생님은 수식이나 요약한 정의 등을 쓴 종이를 칠판에 압정으로 붙였다. 종이는 크지 않았고, 한 시간에 세 장 정도가 깜짝 등장했다. 그런 방식이 새로워서인지 아이들의 집중도가 올라갔다. 장학사가 왔을 때 보고 수업 방법이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고 선생님이 기분 좋은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청소할 때 보니 칠판에 점점이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다른 과목 선생님이 글씨를 쓰다가 ‘칠판에 구멍이 뚫려 있네’라 한 적도 있다. 수학 선생님도 칠판을 훼손한다는 걸 알았는지 나중에는 덜 붙였다. 그래도 잘 가르치셨다. 나는 요점을 정확히 짚어주고 문제를 풀게 한 그분께 배울 때 수학을 제일 잘한 것 같다.


그 선생님 이후로 나와 잘 맞는 수학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 나는 일찌감치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수학과의 관계는 늘 삐걱거렸다. 나는 수학을 싫어하지 않았지만 수학은 나에게 냉담했다. 때로는 수학이 재미있기도 한데 왜 수학에서 기뻐할 만한 점수는 받을 수 없는지 수학만 보면 한숨이 나왔다. 수학 선생님이 담임이 되었다고 수학 성적이 오르지도 않았다. 주요 과목 담당 담임이라고 괜히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리미트 선생님을 포함해 선생님들은 열정이 많았다. 선생님들의 열정이 우리에게도 옮겨붙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중1 때 수학 선생님은 우리에게 수학이 싫으냐면서 자신은 수학이 안 든 날은 학교 가기 싫었다고 했다. 영어는 무지하게 싫어했는데 국, 영, 수, 세 과목을 보는 대입 본고사에서 한 과목이라도 0점이 나오면 불합격이었단다. 수학은 다 풀고 영어 시험을 볼 때, 지문에 ‘dream’ 이란 단어가 여러 번 나왔는데 ‘위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라는 문제가 있어서 옳다구나, 하고 ‘꿈의 세계’라 써 그 한 문제를 맞혀 합격했다고 한다. 영어를 한 문제만 맞히고도 합격할 정도의 수학 실력이라면 얼마나 뛰어났을까?

반면 ‘sad movie’라는 팝송을 무척 좋아했다는 중2 때 영어 선생님은 영어가 너무 좋아서 영어 공부하러 학교에 갔다고 했다. 그날 배운 건 그 자리에서 다 외워버리고 주로 예습을 많이 했다고 자신이 영어 잘한 비결을 알려주었다. 선생님이 본문을 읽고 설명하다가 어떤 단어를 말하며 ‘언더 라인, 해봐’ 할 때 우리가 말로써 ‘언더 라인~’ 따라 해서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별명이 아기 코끼리였던 고3 때 수학 선생님은 교과서나 자습서의 100쪽이나 문제 번호가 100만 나오면 ‘수도 좋은 100!’이라고 했다. 100점, 출생한 지 100일, 100주년처럼 100이라는 숫자가 들어가면 좋은 경우가 많으니 그렇게 말하면 덩달아 좋은 기분이 들어 미소가 지어졌다.

선생님은 종종 우리가 문제를 잘못 이해했을 때나 누군가의 행동에 대해 ‘어리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 ‘어리다’는 ‘어린 백성이’ 할 때처럼 한글 창제 초기의 뜻이라고 덧붙였다. 즉, 어리석다는 뜻인데 우리는 그 말에도 흐흐, 웃을 만큼 어렸다.

그 선생님도 수학을 여간 좋아한 게 아니었다. 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면 이렇게 재미있는 시간에 어떻게 졸음이 오나, 하는 얼굴로 두둑한 턱살에 더 주름을 잡으며 눈을 끔뻑끔뻑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연평도와 성함이 비슷한 고등학교 때 남자 지리 선생님은 등고선을 ‘할머니 뱃가죽 같죠?’ 해놓고는 얼굴이 빨개져서 돌아서서 웃던 분인데, 한 번씩 오른팔을 들어 올리면 분필로 칠판에 흰 점을 찍으며 죽령, 조령, 추풍령,… 하고 태백산맥 줄기에 자리한 고개 이름을 차례대로 한참 읊어 내리곤 했다. 수없이 반복했지만 지리를 ‘지리한 지리’라 불렀던 나는 졸업할 때까지 그 고개를 다 못 외웠다. 자신이 열렬히 좋아하는 대상을 일생의 업으로 삼은 선생님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나는 다정다감하지 않은 자신을 이성적인 사람이라 여겼다. 그래서, 수학, 과학 같은 학문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안다. 나는 수학, 과학을 흠모했으나 끝까지 파고들 만한 애정과 소질은 타고나지 못했다는 걸. 나는 이성적인 사람도 감성적인 사람도 아니고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미숙한 사람이라는 걸.

아이에게 사주었던 ‘수학의 정석’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 언젠가 심심하거나 더 나이 들어 출입조차 힘들어지면 조용히 앉아 치매 예방 겸 풀어봐야지, 하고서. 나는 아직도 수포자는 아니다. 수학, 과학에 대한 관심을 아주 놓지는 않았다.

요즘도 쉽게 쓰인 수학 관련 도서를 읽는다. 수학자나 과학자들의 이야기도 좋아하며 ‘이기적 유전자’나 ‘코스모스’ 같은 과학 교양서도 본다. 수식을 이해 못하더라도 배경 이야기를 읽고 도출된 과정을 따라가려고 애써본다. 이성적인 사람은 못 되어도 이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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