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식하다. 모르는 일도 많고 모르는 말도 많다.
종이 신문을 받아보고 있다. 어릴 때는 신문에 읽을 수 없는 한자가 나오면 답답했다. 지금은 한자가 없어 못 읽는 글자는 없는데도 답답하다. 읽은 글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서다. 모르는 말은 찾아보고 알게 되는 것도 있고 봐도 이해되지 않는 것도 있다. 볼 때는 알았는데 금세 잊어버려 다음에 나오면 또 모르는 말도 있다.
경제, 금융 관련 용어가 어렵다. ‘코스닥’과 ‘나스닥’의 뜻만 겨우 이해하는 수준이라 ETF 같은 영어 약자는 괜히 어렵게 느껴진다. ‘환 헤지’니 ‘선물 옵션’이란 말에는 머리가 아프다. 장외 홈런은 아는데 장외 주식은 또 뭔지. 찾아봐야지.
한 번 찾아본 말인데도 기억하지 못하는 까닭은 전문 용어라 어렵기도 하지만 우리 말이 아니어서인 듯하다. 우리 말로도 어려운 경제, 과학 용어를 우리 말로 옮겨주지 않으니 그 말을 이해하기도 기억하기도 힘들다. 정치, 사회, 문화 관련 어휘도 마찬가지다.
‘메세나’의 뜻은 찾아보고 알았다. 선거철에 벽보에 적힌 발음하기도 어려운 ‘매니페스토’라는 말은 돌아서자 잊어버렸다. ‘필리버스터’도 힘들게 기억했는데 국회 관련 뉴스에 하도 자주 나오니 이 말만은 잊을 새가 없다. 이렇게 어려운 말을 왜 원어 그대로 쓰는지 모르겠다. 나처럼 무식한 사람도 알아듣기 쉽게 우리말로 좀 바꿔 주면 안 되나?
정부에서는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왜 꼭 티에프(TF)나 태스크 포스 팀을 구성한다고 할까? 전담반을 꾸리면 되지. 반대 의견을 가진 상대 진영을 두고 ‘포퓰리즘적’이라는 말을 써야 할까? 인기에 영합한다고 하면 뜻이 더 잘 전달될 텐데.
우리말과 외국어를 이상하게 조합하기도 한다. 한 정당에서는 ‘먹사니즘’이라는 말을 썼다. 저게 뭔가, 생각할 필요 없게 먹고 사는 문제, 라 하면 더 알아듣기 쉬웠을 것이다. 해석할 필요 없는 말이 좋다.
‘동사무소’가 어때서 ‘주민 센터’로 바꾸었을까? ‘주민 센터’라 하면 뭐 하는 덴지 감이 잘 오지 않는데 동사무소라 하면 바로 안다. 나는 아직도 ‘동사무소에 가서 떼면 돼’나 ‘동사무소에서 떡국 떡을 판대’라고 한사코 ‘동사무소’라 한다.
바른 말길을 인도해야 할 신문, 방송에서 공연히 외국어를 조합하고 남발하여 복잡하게 만드는 건 문제라고 본다. 한겨레 TV에서 진행하는 아침 ‘뉴스 쇼’의 제목은 ‘뷰리핑’으로 시각(View)과 요약, 설명(Briefing)의 합성어라고 한다. ‘한겨레’라는 이름과 전혀 걸맞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그런 뜻을 지닌 우리 말을 정녕 찾을 수 없었을까?
예전 언론에서는 한자는 물론 한자어도 되도록 쓰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독식이라는 말도 독차지, 로 쓰는 게 좋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모두 우리말을 살리고 지키려는 열정이 뜨거웠나 보다. 그들이 지금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뭐라고 할까?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같은 줄임말을 그대로 옮겨 쓰고 ‘사실’보다 ‘팩트’를 선호하는 걸. 그들이라면 얼마든지 다르게 바꿀 수 있는 ‘브리핑 룸’이라는 말도 두고 보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는 일반인이 알아둬야 할 생소한 말이 아주 많아졌다.
우리말로 옷을 갈아입지 않고 자주 등장하는 말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그런 말을 학교 다닐 때 영어 단어 외우듯 외워야 한다. 코로나 때부터 많이 쓰기 시작한 ‘키오스크’ 는 이제 익숙해졌지만 ‘도어 스테핑’, ‘피처링’, ‘웰 다잉’ 등 외워야 할 단어는 점점 늘어난다. ‘존엄사’라는 우리말이 ‘웰 다잉’보다 잘 외워지지만 같이 쓰이니 둘 다 알아둬야 한다. 얼마 전에는 ‘생크추어리’ 라는 단어를 새로 외웠다. ‘동물 보호 구역’이란다.
‘피트니스 센터’를 처음 보았을 때는 뭐 하는 곳인가 했었다. 그 이름과 함께 그곳에 있는 ‘트레드 밀’과 운동법인 런지, 스쾃, 데드 리프트 같은, 영어 교과서로는 공부하지 않았던 단어를 다 새로 배웠다.
‘보이스 피싱’은 알지만 ‘스미싱’이란 말은 뭔지 몰라 찾아보니 ‘문자 메시지 사기’라 한다.
오늘은 브런치에 실린 글에서 ‘테트라포드’라는 말을 접했다. 방파제로 쓰이는 발이 네 개인 콘크리트 구조물. 보기만 했지 그렇게 어려운 이름이 붙어있는 줄 몰랐다. 발 넷이란 뜻이라 우리말로 ‘사발이’라 하기도 한다는데 그게 딱 좋다. 말하기도 기억하기도 훨씬 쉽지 않은가?
사회는 점점 복잡해져 날마다 새로운 말이 쏟아져 나온다. 피로감이 들지만 백 년 전에는 없었는데, 돌도끼 시절이 좋았어, 하고 있을 수도 없다. 무식을 면하려면 새 말이 나올 때마다 열심히 익혀야 한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더니 정말 그렇다.
찻집에 가서 주문을 하려고 정면의 벽을 올려다보면 정신이 아뜩해진다. 자습서 양면이 펼쳐진 것처럼 수많은 글자가 적힌 행렬이 눈앞을 가로막아서다. 저 많은 선택지 중 어느 걸 골라야 할지. 커피를 좋아하고 카페인에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야 나도 외워서 아는 단어인 ‘아아(아이스 아메카노)’나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라 하면 그만일 테다. 그러나 정오 이후에 커피를 마시면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하는 나는 그럴 수 없다.
커피가 주종인 가게에서 커피를 빼고 다른 하나를 고르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지. 차갑지 않고 맛있는 차를 찾아 ‘그린 티’, ‘블랙 티’, ‘캐모마일’ 등 외국어로 쓰인 수많은 차 이름을 몇 번이고 읽는다. 녹차, 홍차, 국화차...라고 해독하면서.
‘블랙 티’는 중국을 포함한 동양에서는 찻물이 붉어서 홍차라 하는 건데 서양으로 건너가서는 찻잎이 검다고 ‘블랙 티’라 한다니 재미있다. 다만 여기는 동양이니 ‘홍차’ 라 써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러 가지 차와 음료수,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가게를 꼭 ‘카페’라고 해야 할까? 발랄하고 활기찬 젊은이들은 ‘카페’에 있어도 어울리지만 나는 찻집이라는 말이 더 정겹다. 찻집에서는 ‘그린 티’, ‘블랙 티’, ‘캐모마일’ 대신 녹차, 홍차, 국화차를 팔 것 같다. 언어가 다르면 선택하기도 좀 쉬울지 모른다. 찻집에서 정담을 나누는 지긋한 사람들을 보면 우려낸 찻물처럼 인생의 향기가 스며 나오는 것 같다.
피자 종류는 어쩜 그리 많을까. 그것도 영어 단어 외우듯 외워 둬야 하는데 나는 아직 그 이름을 다 외우지 못했다. 이탈리아 국수도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어찌 그리 다양한지. 이건 어떤 거냐고 물어보면 무식한 게 탄로 날까 봐 늘 먹던 걸 꼽고 만다. 때로 차림표는 온통 영어로만 적혀 있어 순간 내가 어디 다른 나라에 와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24년 말,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고 한다. 20%의 인구는 눈이 어두워져 꼬부랑 글씨를 읽는 게 편하지 않을 테다. 영어 실력이 출중하거나 자주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영어를 배운 적이 있더라도 ‘키오스크’ 같은 말이 바로 들어오지는 않을 테다. 나처럼 다 새로 외워야 한다. 음식점에 있는 ‘키오스크’는 ‘(무인) 주문기’라 하면 좋겠다.
‘아버지, 이게 여기 시그니처 메뉴예요’ 라 하면 귀가 어두워진 아버지는 십중팔구 ‘뭐?’라고 할 것이다. 그냥 ‘이게 이 집에서 제일 잘하는 거래요’ 하면 아버지는 뒷말이 잘 안 들려도, ‘제일’만 듣고도 무슨 말인지 알 텐데. 왜 쉬운 말을 두고 어렵게 말하는지.
‘대표 음식’ 이라 하는 대신 ‘시그니처 메뉴’라 하는 사람이 더 똑똑하거나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말에 대한 자긍심이 없구나, 여겨질 뿐이다. 우리 말에는 없고 도저히 그 외국어가 아니고는 표현할 수 없는 거라면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멀쩡한 우리말을 두고도 기억하기 어렵고 세대 간의 소통을 어렵게 하는 성가신 외국어를 쓰는 건 좋지 않다고 본다. 우리말을 구지레한 본처처럼 여기지 말자.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주는 게 신문, 방송 같은 언론 매체가 하는 일이다. 풀어주면서 쓰는 말도 알기 쉬웠으면 한다. ‘챗 지피티’라는 말은 얼마나 발음하기 어려운가. 새로 들어온 외국어를 나이 든 사람도, 어린아이도 하기 좋도록 적당한 우리말로 다듬어 전파하는 것 또한 언론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 나처럼 무식하거나 보통의 지력을 가진 사람도 복잡한 현실과 새로운 문물을 무난하게 이해하고 잘 활용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