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 금지

by 가을산

야단맞는 아이스크림이 있다. 아이스크림 이름이 문제지 아이스크림은 아무 잘못이 없다. 아이스크림 이름은 ‘설레임’이다. “'설레다'가 동사의 기본형이므로 명사화 접미사는 모음 뒤에 오는 '-ㅁ'이 붙어 '설렘'이 바른 표기입니다.” ‘설레임’ 아래에 붉은 줄이 쳐져서 열어보면 나오는 설명이다. 그렇다. 설레임은 잘못된 말이다. 설레는 건 저절로 되는 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붕 뜨는 건 가슴아 설레어라, 심장아 더 뛰어라, 해서 기관이 작동하는 게 아니다. 시켜서(使) 하는 것도 설렘을 당해서(被)도 아니니 피동형으로 쓴 ‘설레임’은 틀린 말이다.

아이스크림이 출시된 후 날개 돋친 듯 팔리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게 된, 아이스크림을 잘 먹지 않을 국어학자가 근엄하게 지적했다. 틀린 말이라고. 그 후에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누군가가 이름이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품 이름은 상호처럼 고유명사니 써서 안 될 것 없다는 변명을 대며 아이스크림 제조사는 이름을 고치지 않는다. 문제는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는 어린아이나 성인들까지 그걸 바른말이라고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누가 그 이름을 지었는지 그 사람에게 5천만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죄로 벌금을 오천만 원쯤 물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일로 더 알려져서인지 2003년에 처음 나온 이 아이스크림은 여태까지 잘 팔리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가 자신은 여행 자체보다 여행 가기 전의 설레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때가 여행 떠나기 전인 듯 가슴에 손을 얹고 설레는 표정을 짓는 친구에게 ‘설레임 금지!’라 하면 좋은 기분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참았다. 그저 설레면 되는데 설레이기까지 하다니.


딕 훼밀리의 ‘나는 못난이’라는 노래에는 ‘설레이며 말 못 하는 나의 마음을 용기 없는 못난이라 놀리는가 봐’라는 가사가 나온다. ‘설레이는 소년처럼’으로 시작하는 신해철의 노래도 있다. 설레며, 설레는, 보다 설레이며,나 설레이는,이 더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고 여기는지 시구나 노래 가사에는 흔히 뒤의 말이 쓰인다. 어린 조카와 아이들을 재울 때 많이 불러주었던 ‘섬 집 아기’라는 동요에는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라고 맞게 되어있어 다행이다.


영어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피동형 말과 수동태 문장을 많이 쓴다고 국어학자들이 개탄한다. ‘본다’는 능동이고 ‘보인다’는 피동이다. 영어 시간에 수동태를 배우기 전에는 보거나 보이거나, 둘 중 하나로 충분했다. 그런데 이제는 ‘보인다’로는 부족한지 ‘보여진다’는 말도 쓴다. 피동 보조 어간 ‘이’에 또 피동의 의미를 지닌 ‘지다’를 쓴 잘못된 말이다.

‘쓰여진다’도 많이 쓰지만 ‘보여진다’처럼 틀린 말이다. ‘쓰다’의 피동형은 ‘쓰이다’면 족하다. ‘쓰이게 되었다’도 생각해 볼 말이다. ‘쓰이다’와 ‘되었다’는 각각 피동형 단어라 두 말을 같이 쓰면 이중 피동이다. ‘쓰게 되었다’나 ‘쓰였다’로 해야 맞다.


‘잊혀진 계절’의 ‘잊혀진’도 ‘잊혀진 사람', '잊혀진 사건’처럼 많이 쓰고 있지만 이중 피동으로 틀린 말이다. ‘잊힌’이 맞다. 그러고 보니 가수들이 노래에 잘못된 말을 써서 퍼뜨리는 경우가 꽤 많다.


피동이나 사동을 만드는 ‘이’라는 보조 어간이나 접미사를 공연히 붙이는 경우도 있다. ‘날이 개이고’에서 ‘이’는 쓰지 말아야 한다. ‘개다’는 날씨가 맑아지다, 는 뜻의 자동사다. 스스로 맑아지는 것이니 피동 접미사 ‘이’는 필요 없다.


고등학교 때 한 선생님은 ‘...하게 돼진다’는 말을 잘했다. 들을 때마다 이상하고 왠지 맞지 않는 말 같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되다’는 그 단어만으로 충분한 자동사라 거기에 피동형 ‘~지다’를 붙여 ‘되어지다’로 쓸 수 없다는 걸. 선생님도 몰랐나 보다.


‘흘려졌다’는 ‘흘렸다’의 피동형으로 틀린 말은 아니라지만 어색하다. ‘내가 흘린 게 아니고 저절로 흘려졌어!’라고 항변하는 아이가 떠오른다. ‘바닥에 우유가 흘려졌다’보다 바닥에 우유가 ‘흘렀다’나 ‘쏟아졌다’가 더 자연스럽다. 피동보다 능동형으로 쓰는 게 우리말답다. 글도 능동형으로 쓸 때 더 힘이 있다고 한다.


황동규 시인의 유명한 시 ‘즐거운 편지’에는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하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헤매일' 은 불필요한 ‘이’가 든 맞지 않는 말이다. ‘헤맬' 이 맞다. 시인에게는 ‘시적 허용’이라는 권리가 있어 틀리게 써도 법(맞춤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일반인은 법에 맞게 쓸 의무가 있다. 헤매이면 안 된다. 가끔 헤맬 수는 있어도.


여행 갈 날이 다가오더라도 설레이지 말자. 그녀를 만나기 백 미터 전에도 설레이면 안 된다. 잊힌 줄 알았던 첫사랑과 재회하는 날 설레이는 소년 소녀처럼 반쯤 정신이 나가면 안 된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큰 낭패니까. 그렇지만 설렐 일에 한껏 설레는 걸 누가 뭐라 하랴.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까, 설렘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참 좋겠다. 갑자기 오래전에 인기 있었던, 어법에도 맞는 노래 한 소절이 불쑥 떠올라 혀끝을 차고 나간다. ‘설레는 마~음 아가씨 마음 울렁울렁 울렁거리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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