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현관문에 배달하는 우유나 요구르트를 넣을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철문 아래쪽에 우유가 들어갈 만큼 사각형으로 잘라내고 문을 달아 바깥에서 열고 우유를 넣으면 현관 안쪽에 놓였다. 그 앞에 열쇠를 두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그곳으로 손을 집어넣어 꺼내서 문을 열기도 했다. 그걸 악용한 범죄가 빈발하자 언젠가부터 만들지 않게 되었다. 있던 구멍도 나무나 철판을 덧대어 막았다. ‘우유 투입구’라는 이름이 있었다.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안에서 눈을 대고 들여다보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작은 구멍도 문에 뚫려 있었는데 그건 이름이 없었다.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했는데 아무도 그 이름을 몰라 ‘누가 오면 들여다보는 구멍’이니 ‘밖을 내다보는 구멍’이라고 했다.
그즈음, 이 구멍과 관련해 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기억한다. 프랑스인이라면 이것의 이름이 없다면 대대적으로 공모해서 즉시 적당한 이름을 붙여주었을 텐데 우리나라 사람은 그런 관심이 없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관심은 있었지만 궁리해도 적당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른대도 내 마음대로 붙일 수도 없었겠지만.
한참 뒤에야 그 구멍을 ‘도어 뷰’라고 부른다는 걸 아파트의 보수 공사 관련 내용문을 보고 알았다. 정확하게는 ‘도어 뷰어’라서 요즘은 그렇게들 부르는 모양이다. ‘외시경’이라고도 한다는데 ‘도어 뷰어’보다 알아듣기 쉽지만 이 말은 아무도 쓰지 않을 것 같다.
북한에서는 뭐라 하는지 궁금해서 알아보니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명확하게 정해진 단어는 없고 ‘문 보기 창’이나 ‘문 구멍’이라 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직관적이라 좋다.
얼마 전 김훈 작가의 글을 읽다가 ‘어안’이라는 말을 접했다. 바로 이걸 이르는 말로 어안 렌즈를 이용한 구멍이라서 작가는 이렇게 부르나 보다. ‘도어 뷰어’보다 짧아서 좋고 말도 마음에 든다. 지금은 현관문까지 가지 않고도 거실에서 화면으로 밖을 볼 수 있는 기계를 많이 달고 이 구멍도 막는 추세니 이 이름은 이 정도에서 그칠 모양이다. 그런데 거실에서 보는 이 기계 이름은 또 무엇인가? 처음엔 인터폰 다음 단계로 비디오 폰이라 불렀다가 다른 기능이 여러 개 추가되면서 더 복잡한 이름이 된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다.
‘로켓 배송’이라는 게 있는 줄은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 다른 택배사에는 ‘슈팅 배송’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온라인 서점에는 ‘총알 배송’이 있다. 로켓, 슈팅, 총알. 이런 이름을 소비자가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있는가? 빠른 배송, 이라 하면 될걸. 아, 그러고 보니 ‘빠른 배송’이란 말도 어딘가에서 고유 명사처럼 쓰는 것 같다. 이런 경우는 굳이 없어도 될 이름을 만드느라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판매 촉진을 위한 방식이나 제품 이름을 만들 때 말고는 신문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사물이나 대상에 적절한 이름을 붙이는 데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제대로 된 이름이 없이 존재하는 것이 많다.
아파트 입구라 하면 대개 정문, 후문이라 불리는 곳을 말한다. 그럼 승용차가 들어가는 차단기가 내려진 곳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방문하는 사람에게 말할 때는 거기 있잖아, 아저씨 있는 곳, 경비 있는 곳, 이라 말하는데 요새는 경비나 아저씨가 없는 곳도 많다. 차 들어오는 데, 차단기 있는 곳, 이라고도 하는데 차 들어오는 데가 한 군데가 아닌 곳도 있다. 그럴 땐 ‘오른쪽으로 틀어서 쭉 들어오면 경비 있는 곳이 나와’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경비 없는 ‘경비 있는 곳’이나 ‘차단기 있는 곳’을 한 단어로 짧게 말할 수는 없는가? 방문자를 확인하는 곳이라도 검문소, 라 하기는 그렇고 뭐라 해야 할지. 적절한 말이 있으면 좋겠다. 공동 주택에 사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필요하면 새로운 명칭도 만들어야 한다. 꼭 알맞은 우리말을 두고 불필요한 영어를 쓰는 것보다 훨씬 더 필요한 일이다.
KTX, SRT, GTX. 이 세 가지를 구별하는 게 힘들었다. 영어로 되어 있으면 공연히 뭔가 어렵고 복잡한 느낌이 든다. 무엇의 약자인지 알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걸. 이 셋을 구별해서 쓰는데 에너지가 든다.
예전에는 아무 데서든 기차 타고 간다,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어디서 케이티엑스를 탈 거라거나 에스알티로 갈 거라고 말한다. 에스알티는 수서에서, 케이티엑스는 서울역에서 타는 것도 꼭 기억해야 한다. 동탄에 사는 친구는 지티엑스를 타고 올 거라고 말한다.
치매가 오면 명사부터 잊어버린다는데 알파벳으로 된 이 글자들, 다 기억할 수 있을까? 발음하기도, 떠올리기도 힘든 이 영어 약자 대신 간단한 한글 이름을 좀 붙여주면 좋겠다.
아파트 각 동 출입문 옆 벽에 붙어 있는, 입동 비밀번호를 누르거나 출입 카드를 갖다 대는 기계의 이름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카드 갖다 대는 데’나 ‘비밀번호 누르는 데’나 ‘문 옆에 있는 거’라고 한다. 전라도 말로는 ‘거시기’ 하면 다 통한다니 ‘거시기’라 하면 될까? 집안에서 화면 보며 방문자 확인하는 기계도 거시기, 밖에서 들어올 때 누르는 기계도 거시기, 애매하고 불확실한 걸 다 거시기라 해버린다면 삶도 거시기하지 않을까?
아무리 큰 고통도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만 있다면 견딜 만하다고 한다. 감정을 세심하게 살펴 정확하게 이름을 불러준다면 심한 상처인 줄 알았던 것도 별거 아니게 될지 모른다. 만물에 분명한 이름을 달아준다면 사는 게 더 단순해지지 않을지. 이름을 불러줘야 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