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과 아줌마

by 가을산

오래전에 살던 동네에서 아파트 경비원은 나를 아주머니, 라고 불렀다. 아줌마 소리 들은 지 오래라 그 말에 아무런 저항감이 없었다. 아이 친구의 아버지가 나를 아주머니, 라고 지칭한 일이 기억난다. 옆에 있던 아이 엄마가 웬 아주머니냐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불리는 게 싫지 않았다.


‘아주머니’를 사전에서 찾으면 1) 부모와 같은 항렬의 여자 2) 남자가 자기 또래 남자의 아내를 부르는 말 3) 친척이 아닌 기혼 여성을 높여 정답게 부르는 말 4) 형수를 친근하게 이르는 말, 이라고 되어있다. 나보다 두 살 적은 아이 친구의 아버지가 나를 아주머니, 라 부른 건 2)나 3)의 예로 맞게 쓴 것이다. 이렇게 두루 쓰일 수 있는 말이 ‘와이프’ 같은, 예쁘지도 않은 단어에 밀려 잘 쓰이지 않는 게 아쉽다.


이 ‘아주머니’를 줄여서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 ‘아줌마’다. 어렸을 때 내가 불렀던 ‘아줌마’는 그저 친척 아닌 여자 어른을 부르는 말이지 전혀 비칭도, 멸칭도 아니었다. 남편도 어려서 맞은 형수를 아줌마, 라 불렀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아줌마로 진입한 때는 ‘아줌마’라는 말 한마디에 전쟁도 불사했다.

낯선 사람에게 쓸 때 ‘아주머니’는 정중한 표현이지만 ‘아줌마’는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말이 얕잡아 보고 낮추는 말로 들려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 아줌마가!’ 하여 ‘이 아저씨가 어디서 아줌마래!’ 하며 큰 싸움이 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모든 말이 그렇듯 ‘아줌마’라는 단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말을 어떤 투로 하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남편이나 아내가 싸우다가 화내면서 ‘사랑해, 사랑한다고!’ 하고 고함치는 건 애교로 봐줄 수도 있겠지만 멸시하는 투로 ‘아줌마!’ 하면 누군들 기분이 좋겠는가. 그런 투로는 ‘아주머니!’라고 불러도 반갑지 않을 테다. 중년 남성이 뻣뻣하게 서서 고압적으로 ‘아주머니!’ 하던 TV 드라마 속 영상이 얼핏 떠오른다.


‘아주머니’보다는 ‘아줌마’의 방언일 ‘아지매’라는 호칭을 자라면서 많이 하고 들었다. 외삼촌은 외삼촌이라고 부르면 너는 아버지께 1촌이라고 부르느냐고 야단을 치셨다. 삼촌, 숙모, 이모, 고모는 촌수를 말하는 거라며 아재, 아지매, 로 부르게 하셨다. 덕분에 오랜만에 친척을 만나 누군지 잘 모르겠으면 대충 아재나 아지매, 로 부르면 크게 잘못될 게 없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이모, 고모, 외삼촌이라 부르지 아재, 아지매, 라 부르지 않는다. 외삼촌이 살아서 보신다면 혀를 끌끌 차겠지만 어떤 관계의 친척인지 정확히 아는 좋은 면도 있다 하겠다.


‘아지매’로 불렸을 때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낮춰 부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일 테다. ‘부산 아지매’, ‘아지매 국밥’ 같은 단어에서는 따뜻한 정이나 푸근한 인심이 느껴진다. ‘아줌마’는 친척 아닌 사람에게 쓰는 말이고 친척에게만 ‘아지매’라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혈연관계가 없어도 친해지면 언니나 형님이라 부르듯 시장에서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아지매, 라 부르고 불리면 친척이 아니라도 정겹게 들린다.


아주머니나 아줌마로 불리던 나는 이사를 하자 갑자기 사모님이 되었다. 경비 아저씨도, 관리사무실 직원도, 부동산에서도, 실내장식 해주는 사람도 다 나를 사모님이라 불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선생님의 부인은 사모님이라 불러야 한다고 가르쳐 준 다음부터 사모님은 그런 분에게만 붙인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남편이 다 선생님은 아닐 텐데 사모님이라 불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아무나 다 사모님이란다. 나는 차라리 ‘아주머니’가 더 좋은데 누군가는 그게 극성스러운 이미지가 연상되는 ‘아줌마’랑 같다고 생각해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들 ‘사모님’이 되는데 그 호칭은 만족스러운가?


남편 회사 직원이 처음 사모님이라 불렀을 때 몹시 불편했다. 들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몰랐다. 시간이 흘러 남편 부인들의 모임에 갔더니 모두가 누구 사모님, 누구 사모님, 하고 불러대어 더더욱 불편했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모인 사람들도 그 말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나이 들어서 만나 이름을 부르기도, 언니, 동생이라 하기도 결례라 여겼다. 그래서 말을 시작할 때나 끝낼 때나 사모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모임에 나가지 않게 되어 사모님 소리를 듣지 않으니 살 것 같았다.


나는 왜 사모님 소리가 그렇게 불편했을까? ‘사모님’은 선생님의 부인 외에 높은 직위에 있거나 존경할 만한 사람의 부인을 높일 때도 쓴다. 남편이 그런 사람이 아닌데 쓰는 것도 싫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런 사람의 부인에게 붙이는 말이니 나의 성취와는 무관하여 재미가 없었다. 나는 무임승차를 싫어한다. 대통령도 아닌데 대통령인 양 행세하는 부인은 얼마나 역겨운가.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못 되어서도 부담스러웠다. 남편 회사 직원이나 부인이 사모님이라 부르며 뭔가를 물어볼 때 확신에 찬 대답을 해줄 수 있을 만큼 관록이나 축적된 지혜가 없었다. 아무래도 나에게는 지체 높고 교양 있는 ‘사모님’보다는 ‘아줌마’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이제 ‘아줌마’라는 호칭에도 감지덕지할 나이가 되어간다. 공경하는 의미에서 부르는 ‘아주머니’는 머리 하얀 할머니와도 잘 어울리지만(80대가 된 엄마도 엄마라 부르지 할머니라 하지 않듯이 형수는 나이가 들어도 형수다) 그게 아깝다면 조금만 부드러운 말투로 ‘아줌마’라 불러주면 나는 만족하겠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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