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실 Aug 26. 2024

배낭 속 사치품을 소개합니다

순례길 신부 입장 ep.6

배낭을 꾸릴 때 짐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없앴다. 그런데 딱 하나는 예외였다. 무거워서 잘 챙기지 않는 책. 1988년 출간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라는 책이다. 작가가 유명해지기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떠오른 상상을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다. 이상하게 이번 여행에서 이 책을 가져가고 싶더라. 그래서 새로 구매하기 위해 서점에 갔다가 놀랐다. 알고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비유한 이야기인 것이다. 정말 몰랐다. 이런 끌어당김이 있나!



이 책에는 주인공인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양치기 일을 내려놓고 고향을 떠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향하는 여정이 담겨있다. 늙은 왕, 과자 장수, 사랑하는 여인 파티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한다. 그 과정에서 돈과 사랑과 우정,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하나도 와닿지가 않아서 내용도 거의 기억을 못했다. (끝까지 다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장 읽고 천천히 생각하느라 아주 느리게 책에 푹 빠져서 읽었다.


그러나 단순한 재미 때문에 이 책을 챙긴 것은 아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재미’를 기준으로 짐을 챙기지 않는다. 약하디 약한 정신력을 다잡아야 할 내게 필요한 짐이었다. 무사히 피라미드에 닿은 산티아고가 나이길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챙긴 것이다.


무사히 걷고 알베르게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때는 하루를 잘 끝냈다는 안도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두려움 안에는 내가 끝까지 완주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과 의심이 있었다. 발 빠른 순례자들을 느린 나와 비교하는 마음, 매일 하고 있는 이 중구난방 기록들이 의미 없다는 생각,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고나서도 뭔가를 깨닫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끝이 있는 이 길은 믿지만, 길을 걷는 나를 믿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손바닥만한 일기장을 꺼냈다. 두려울수록, 불안할수록 떠오르는 감정을 두서없이 쏟아냈고, 다 쏟아내고나면 내내 울다가 겨우 진정해 자장가를 들으며 잘 준비를 하는 아이처럼 『연금술사』를 펼쳤다. 책 속의 산티아고도 나처럼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혼란을 통과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한 챕터씩 산티아고가 성장할 때마다 마음이 진정되었고 잠에 들었다.


매일 밤 자기 전에는 알베르게 침대에 엎드려 일기를 썼다.


순례길을 걸을 계획이거나 혹은 지금 걸어가는 삶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이 사치품을 챙기라고 추천하고 싶다. 2가지 이유로 추천한다. 첫째, 알베르게 침대에 누워 작은 불빛 아래에서 읽으면 일단 폼이 난다.(ㅋㅋ) 두번째 이유는 내 속에 있는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랠 수 있다는 점이다. 효과가 꽤 좋다. 그런 의미로 밑줄 친 문장들 몇 가지를 나누고 싶다. 물론 처음부터 읽으면 더 좋다. 양치기 소년 책구절에 산티아고의 삶의 여정이라는 맥락이 더해져 활자의 의미가 풍요로워질 것이다.



혹시라도 두려움이 나에 대한 믿음보다 훨씬 작아지는 날이 온다면 이 책을 알베르게에 두고 가야지. 아직 오지 않은, 이름 모를 한국인 순례자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가 숙면을 취하고 내일 또 걸을 수 있도록.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아직도 어느 정도 의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결정이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116쪽)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 (142쪽)


비밀은 바로 현재에 있네.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면 현재를 더욱 나아지게 할 수 있지. 현재가 좋아지면 그 다음에 다가오는 날들도 마찬가지로 좋아지는 것이고. (172쪽)


용기야말로 만물의 언어를 찾으려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 (183쪽)


“어째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죠?” “그대의 마음이 가는 곳에 보물이 있기 때문이지.” (210쪽)

아무도 자기 마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는 없어. 그러니 마음의 소리를 귀담아듣는 편이 낫네. 그것은 그대의 마음이 그대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대를 덮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야.” (211쪽)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212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