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보내는 신호

by 외딴방

'아이들은 어른인 우리가 칠하는대로 아웃풋이 나오는 흰색 바탕의 도화지가 아니라, 희미한 밑그림이 그려진 상태의 도화지와 같다'라고 아들 육아 관련 유튜브를 운영하는 최민준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밑그림이 말하는 것은 아이가 타고난 기질과 성향이라는 것일 것이다.

그 밑그림을 잘 이해하고 잘 보존시켜 나가면서 두드러진 강점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를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나 또한 내 아이가 가지고 있는 '밑그림'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에 잘 맞춰 '선행'이 아니라 '적기 교육을' 시켰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이 반성 중에 있다.




우리 아이가 처음 영유를 다니고 여름 방학 전까지인 5개월 정도는, 그래도 잘 적응하면서 다녔던 것 같다. 다행히도 유아교육 전공을 하신 부담임 선생님을 운 좋게 만났던 것과, 5세 때 같은 일반 유치원에서 온 친구들이 몇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적응이 수월했던 것 같다.

커리큘럼적으로는 'No Korean'을 하기 전이었고, 부담임 선생님을 아이가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 분이야말로 아이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시고, 정서적인 면을 신경 많이 써주셨고, 아이들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해주시고 응원해주시며, 부모와 소통해주시는 부분까지 정말 완벽에 가까웠다. 그 분께는 아직도 정말 너무 감사하다. 금요일 스펠링 테스트도 아이가 대부분 다 맞아오거나 하는 날이 많았기 때문에 나 역시 '역시 보내길 잘했다' 생각하며 지냈던 것 같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나서 다시 돌아갔을 때엔 상황이 조금 달랐다. 노 코리안을 시작하게 되면서 우리 아이가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 오늘 하루 어땠는지, 오늘 무엇이 제일 재미있었는지 등등 자기 전에 대화하는 시간을 늘 갖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후에 일반 유치원으로 옮기고 나서부터는... 조잘 조잘 자신이 오늘 누구랑 놀았고, 어땠고 등 이야기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 주 1회 플레이룸 타임이 있는데, "그 시간은 너무 재미 있는데, 금요일은 가기 싫어. 금요일은 테스트 보는 날이잖아?" 하며 금요일 등원 거부를 시작했다. 실제로 단어의 수준이 조금 올라갔던 것이다.

- <No Korean Speaking>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일반 유치원에서 늘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참여하던 아이의 모습이 사라진 것 같았다. 이는 부담임 선생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엄마인 나로서는 일반 유치원에 있을 때 아이의 모습과 영유에서의 모습에 갭이 느껴지자 '아 이게 과연 정말 맞는것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아이가 "한국말로 말하고 싶어." 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이 아이는 정말로 모국어인 한국어로 소통을 하고 싶은 아이구나, 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2월에 있을 드라마(공연 준비)까지는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아이를 설득했다. 아이 또한 드라마 연습이 힘들다고 했지만, 그래도 드라마까지는 해볼래, 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내년에 일반유치원으로 가보자, 라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서.... 아차, 싶었다. 그래. 내가 내 아이를 너무 몰랐구나. 아니, 알고 있었음에도 모르는척 했던 것일까.


우리 아이는 '평가'와 '경쟁'이 힘든 아이이다. 금요일마다 가기 싫다는 것은, 테스트를 통해 평가를 받고,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고, 가끔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주기도 해야 하고, 받기도 해야 하는 그 상황들이 굉장히 많이 싫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긍정적인 '배움'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는 없겠구나 생각했다. 당시 반 친구네 집에 놀러갔을 때에 그 친구가 '너 몇개 맞았어? 나는 다 맞았는데.' 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그 아이는 순수한 마음으로 물어본 것이었겠지만, 우리 아이는 그 때 다 맞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분명 그 질문이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아이는 모국어로 된 제대로 된 상호간 소통을 원하는 아이이다. 그 안에서 아이의 배움과 상상력과 인지 능력이 자라나겠구나 싶었다. 특히나 우리 딸은 외동이다. 형제/자매가 있는 환경이었다면 아무래도 그 부분에서 덜 힘들다고 느꼈을 수 있다. 집에 오면 모국어로 누군가 대화를 하고 언어를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동인 우리 딸은 집에 오면 할머니 또는 나 또는 남편과 대화를 하게 되는데, 그마저도 대화 주제에는 약간의 한계가 있다. 또래와 함께 나누는 대화와는 현저히 다를 것이며, 교실 속에서 배움의 주제를 가지고 선생님과 주고 받는 그런 대화와도 분명 다를 것이다. 내 아이는 모국어로 소통하며 궁금증을 해소하고, 감정을 주고 받고, 배움의 주제에 대해 더 깊이 받아들이는 아이인데, 그 부분을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나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남편과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건강한거야. 아무 힘듦 없이 뭔가를 얻을 수는 없어.‘와 같은 말 뿐이었기에 뭔가 답답한 내 마음이 풀리진 않았던 것 같다. 아이가 지쳐하고 힘들어서 가랑비에 옷 젖듯 일상에 영향을 주고 있는데, 나만 알아차렸나? 싶었다.


주변 엄마들과 이야기를 해 보아도, 어느 선에서는 공감을 해주었지만, 역시나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어', '숙제 아예 그냥 가끔은 해가지 마', 아니면 '다른 놀이식 영유는 어때?' 수준이었다. 그 와중에 ‘절대로 일반 유치원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엄마도 있었다. 내 괴로움의 정체를 다 오픈하고 공유할만한 그런 공간은 없었기 때문에 점점 더 불안해지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들이 이어졌다. 우리 부모들은 서로 경험한 것들이 다 다르다. 양육 환경도 다 다르다. 그렇기에 교육 가치관에 있어서는 특히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매우 편치 않다.


이 때 나의 고민에 귀 기울여준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직장에서의 선배 맘들이었다. 이미 중고등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거나 나보다 5년 정도는 더 엄마 경력 선배이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힘들어하면 보내지 마. 나라면 바로 그만둘 것 같은데?”

“영어 나중에 초등 고학년 되면 다 비슷해져~ 괜찮아.”

“매주 시험보면 힘들지! 너무 빡센데?”

“영유 안 보냈는데 잘 하고 있어. 괜찮아.”


물론 그 분들이야말로 요즘의 저출산 시대 부모들이 경험하는 불안감을 몸소 겪어보지 않았을 수 있지만, 그래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교육 가치관을 좀 더 믿어도 되겠구나, 결국 대입은 마라톤이 맞구나, 적기 교육이 왜 있는건지, 과도한 스트레스를 굳이 떠안고 나아갈 필요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아이’이다. 아이가 하는 말과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부모로서 적절한 개입을 해 주는 것이 때로는 고통스러워도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해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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