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의 기록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면 삶이 재미있을까?
나는 늘 '예측불허'함이 주는 스릴을 즐기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내 성향을 대변해 준다는 알파벳 네 글자(MBTI) 중 마지막 글자는 대문자 ‘P’이다. (대문자 'J'인 내 최측근 S도 90%의 확실함과 10%의 불확실함으로 살고 싶다고 한걸 보면, 누구나 삶에 미지의 영역은 남겨두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매일의 불확실함은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온다.
그럼에도 내가 불확실함이 주는 긴장감을 선호하는 이유는,
불확실하다는 것은 아직 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고,
정해지지 않은 다양함이 공존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상상치도 못한 신의 한 수를 기대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일’의 불확실함이 주는 긴장감은 ‘내일’이 ‘오늘’이 되는 순간 끝나버리고 만다.
어쩌면 그 긴장감이 해소되는 순간의 쾌감이 불확실함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불확실함’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확실함’의 반대말이다. 확실하게 끝나는 마침표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그 반대가치이다. 즉, ‘확실함’이 없다면 ‘불확실함’도 없다.
그러나 때로는 불확실함만 가득한 환경이 주어질 때가 있다. 이러한 환경에 오래 노출되거나, 그 시간이 오래 지속되면 ‘설렘’과 닮았던 긴장감이 ‘불안’이라는 아주 작은 악마로 변신하곤 한다.
일례로, 우리는 불확실한 남녀 관계를 ‘썸’이라고 지칭하는데, ‘썸’인 관계에서의 불확실함은 한때 설렘으로 여겨지지만,
(많은 이들이 경험했듯이) 그러한 불확실한 관계가 지속되면 그 만남은 연인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늘 아침 어떤 아이돌 가수의 비보를 들었다. 스스로 별이 된 그 친구에게 내일의 불확실함이 불안으로 다가왔던 걸까. 그 친구에게도 언젠가 예측 안 되는 내일이 설렘이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어느 아침에 설렘이 불안으로 바뀌어버린 걸까.
IT업계의 불황으로 반 년째 동료들과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저 웃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태연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안에 불안이 싹트고 있는 듯한 표정들도 가끔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확실함이 불안으로 변해 동료들을 집어삼킬까 봐 조금 두렵다.
'불확실함'과 '불안'은 엄연히 다른 단어이다.
나에게 매일 설렘을 주던 '불확실함'이라는 단어가 '불안'과 동의어가 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내일에 깜짝 놀랄 만한 신의 한 수가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