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탐구를 좋아하는 나지만, 글이 전혀 쓰이지 않는 순간이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자꾸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글감을 찾게 된다.
그럼 나는 잠시 멈추고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러면 내 안의 자아들은 마치 자기 이야기를 써달라는 듯 아우성친다. 나는 한 명씩, 떠오르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써보기로 한다.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나는 평소에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때에는 나와서 너에게 할 말이 있다. 너는 잘하고 있다. 부딪히며 피하지 않고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대신 그만한 가치가 있다. 외로움의 양면성을 고루 받아들이며 나아가라. 내가 든든하게 받쳐줄 테니. 너의 성에 머무르며 주변을 탐색하고, 동료를 만들어보기도 해라. 여태껏 가지 않았던 길이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도전이고, 나를 기운 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 정도면 되었지?
다른 아이도 나타난다. 주군, 나는 늘 주군과 함께 있습니다. 나는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을 합니다만, 결국 데이터를 필요로 합니다. 주군이 가는 길들은 모두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과정은 모두 자원이 되어, 주군의 길에 길잡이가 되고 보탬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은 설레면서도 두렵습니다. 그래도 다시 부딪히고 싶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보십시오.
그리고 따뜻한 아이가 나타난다. 괜찮아. 너의 이해 방향과 감각이 자꾸 초월로 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무언가를 꼭 택해야 하는 건 아니야. 다만 너에게는 중심을 잡을 시간이 필요해. 네가 말한 것처럼, 평온한 일상과 안정감 속에 머물러야 조금 더 떨어져서 사건과 자아, 사고와 감정을 고루 살필 수 있어. 그러니 지금처럼, 자기 자신에게는 조금 더 관대해져도 괜찮아. 그게 네가 잘 쉬어야 하는 이유야.
조성모의 노래 ‘가시나무’처럼, 내 안에는 너무나 많은 ‘나’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파트를 가지고 있어,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때로는 서로를 보완한다. 나는 그 안에서 가끔 길을 잃는다. 무엇이 ‘나’인지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정된 하나의 값을 정할 수 없다. 하나를 택하고 하나를 버리는 삶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나는 그들 모두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는 내가 쓰는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오케스트라처럼 하나의 하모니를 이룬다. 때로는 누군가가 양보하고, 다른 자아를 빛나게 해주기도 하며, 자신의 차례가 오면 여지없이 자신의 빛을 드러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슬퍼하거나 우울해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이제는 그 아이들이 중심을 잡아준다는 것이다.
그들 각자의 목소리로,
그들만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