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도 책임도 결국 나의 몫
나는 종종 우유부단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망설이고, 결국 주변의 조언이나 손익 계산에 끌려가듯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그렇게 내린 선택은 늘 찜찜함을 남긴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득과 손실은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뒤바뀐다.
SNS에서 본 짧은 조언이 있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말할까 말까 할 때는 하지 마라.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많은 사람들이 이 글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 모두 비슷한 망설임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결정을 내린다. 단순한 점심 메뉴부터, 인간관계나 삶을 바꾸는 큰 문제까지. 그리고 그때마다 마음은 흔들린다. 나는 그 이유가 ‘경계에 선 자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디든 가지 못한 채, 갈림길 위에서 머뭇거리는 것이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자. 한 반에 30명의 학생이 있다면, 상위 10명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공부한다. 하위 10명은 많은 도움을 받아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가운데 10명이다. 이들은 누구와 함께하느냐,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성적이 달라진다. 옆에서 열심히 하는 친구와 있으면 따라서 공부하고, 게으른 친구와 있으면 금세 흐트러진다.
우리의 선택도 이와 같다. 분명히 ‘A 한다/B 한다’로 갈리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가운데 10명처럼 상황과 감정에 따라 흔들린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해야 하고, 어떤 선택이든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A를 택하면 A의 이득과 불편을 받아들여야 하고, 동시에 B의 기회는 내려놓아야 한다. 기준이 불분명할수록 사람은 손익을 따지며 머뭇거리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들로 마음이 복잡하지만 결국 핵심은 본질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남의 조언이나 환경에 끌려 결정을 내릴 때다. 잘못되면 상대를 원망하고, 책임을 전가하게 된다. 잘되면 자기 선택이 옳았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결국 선택과 책임도 모두 내 몫이다. 사는 것도, 사지 않는 것도, 듣는 것도, 외면하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이다. 물론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어 하면서도,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롭고 싶어 한다. 하지만 책임은 내 삶에 드러나기 때문에 끝내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일단 결정을 내렸으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언제나 그 순간의 최선을 선택한다. 시간이 지나 후회가 남더라도, 그때는 최선이었다.
설령 잘못된 길로 보이더라도 그것은 과정일 뿐이다. 내가 결정한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는 태도, 그 안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깃든다.
자유의지는 단순히 ‘하고 싶다/하기 싫다’를 고르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환경, 타인의 의견, 불안과 욕망을 모두 바라본 뒤에도 스스로 방향을 정하는 힘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유한 권리이자, 동시에 감당해야 할 무게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나는 표현을 어떻게 다듬을지 망설였다. 글도 하나의 선택이었다.
나는 망설임 속에서도 결국 나의 선택을 마주해야 한다.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흔들림 속에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온전히 끌어안는 것, 그것이 곧 나답게 산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