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함께 걷는 법에 대하여
나는 줄곧 외면해 온 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나만의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학창 시절에는 ‘착한 아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는 ‘지성인’,
그리고 현자의 글을 읽으며 ‘성인(聖人)’의 모습을 닮고 싶어 했다.
나는 왜 이런 이미지를 고수했을까. 극한의 선을 추구하며 그에 비해 초라한 나를 비판하고, 책망하는 과정을 수차례 겪고, 너무 힘든 나머지 그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늘 최고의 선택, 최선의 삶을 추구했다. 올바름, 정의, 도덕, 성숙, 품격… 그런 가치들이 나의 좌표였다. 하지만 그 기준을 내려놓자 삶의 중심이 무너지는 듯한 불안이 밀려왔다. 두려움이 나를 붙잡았고, 그 감정을 들여다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 불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무겁게만 보였던 그것은 의외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잘못되면 어떡하지? 망하면 어떡하지? 후회하면 어떡하지?” 그건 단순한 불안이 아니었다.
완벽을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 안전하게 살아왔던 기준이 사라질까 봐 생긴 허공 같은 감정이었다.
비교와 기준 속에서 ‘최상의 선’을 정해놓았을 땐 편했다. 그 선만 따라가면 ‘옳은 삶’을 사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 기준이 사라지자 갈팡질팡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무엇이 잘못인지도 몰랐다.
허탈한 점은 뭐가 잘못되고, 뭐가 망한 삶인지 조차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막연함, 그저 ‘뭔가 어긋나는 것 같은 느낌’이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왔다.
돌아보면 나는 내가 옳다고 느낀 것을 선택한 게 아니라, 세상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선택해 왔다. 그 기준들은 계속 바뀌었고, 나는 그때마다 혼란에 빠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걷는 길이 곧 나의 옳음이다. 그 길이 나의 과정이고, 나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선택에 책임을 지고, 회피하지 않으며, 나를 기준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말하니 불안은 잠시 잦아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은 조용히 올라온다. 글을 쓰며 만족할 때도, 사소한 행복을 느낄 때도, 문득 속삭인다.
"잘못된 건 아닐까?"
"무언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 인정했다. 잘못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바로잡으면 된다. 무언가 놓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되찾으면 된다.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이상을 좇지 않기로 했다.
나는 지금 나의 과정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