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감정을 넘어 보편으로 확장되는 시의 힘
지인에게 시집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몇 장을 넘겨보다가 곧 덮어버렸다. 슬픔과 고통이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의 감정에 깊이 빠져 묘사하는 것도, 감성 에세이처럼 진한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는 것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다양한 수식과 표현으로 극대화하는 방식은 오히려 부담스럽게만 느껴진다.
어쩌면 나는 내 감정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글 속의 슬픔이나 문구가 공감으로 다가오기보다, 오히려 나의 상처인 듯 느껴져 가슴을 찌르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감정에 휩쓸리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서 관찰하고 이해하는 쪽을 택해왔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있다. 류시화 시인의 모음집에서 처음 알게 된 루미다. 루미의 시는 간결하고 함축적이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품고 있다.
개인의 희로애락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차원으로 확장해 낸다. 그 과정에서 나는깨닫는다. 내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 절망과 우울은 나를 가두고 매몰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무언가와 연결되며 확장되는 경험을 준다는 것을. 그 감각이 나를 위로하고, 다시 안정되게 만든다.
루미의 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편을 소개한다.
여인숙」 잘랄루딘 루미(류시화 옮김)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쓸어가 버린다 해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루미의 시를 읽으면, 물에 같이 빠진 것도 아니고, 물에서 건져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물에 빠져도 괜찮다는 초월적인 안도감을 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물에서 나오게 된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넘어졌을 때, 걱정하거나 같이 아파해주기보다 멀리서 웃으며 바라봐 주시는 부모님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루미가 좋다.
나의 감정은 고이지 않고, 넓은 바다와 만나 연결된다.
그 연결의 힘은 나를 혼자가 아닌 큰 흐름에 맡겨, 여유롭게 만들고 따스하게 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