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선택하는 것들
대화 중에
나는 돈이 있으면 무너지지 않는다고 동생이 말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돈이 있어도 무너질 때가 있었고,
돈이 없어도 무너지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무너지느냐 아니냐는
외부 조건에 달려있지 않았다.
언제나 내가 무엇을 느끼고, 겪고, 생각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
즉, 내부가 기준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전현무의 짧은 인터뷰가 떠올랐다.
전현무는 말했다.
자신은 불안해서 일을 계속한다고.
쉬면 무너질 것 같아서, 일이 들어오면 무조건 한다고.
그리고 자신의 정반대 성향으로 노홍철을 예로 들었다.
노홍철은 시청률이 0%여도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한다.
반면 전현무는 0% 나오면 못 한다. 불안해서.
주변에서 말했다.
“지금 가진 위치와 돈이 있는데, 뭐가 불안해?”
전현무는 대답했다.
“그래도 불안해.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나는 일 놓으면 뭐 하지? 서핑?
나 서핑 못 해.
나는 일만 할 수 있어.
나는 공부만 하면서 살았으니까.”
나는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여기에는 단순한 ‘성향 차이’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을 지키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
전현무에게 안전은
‘성과’와 ‘사회적 위치’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래서 멈추는 것이 두렵다.
반대로 노홍철에게 안전은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것’ 그 자체다.
그래서 자신을 억누르는 것이 두렵다.
둘은 서로를 부러워할 수 있다.
서로가 이상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처럼 살 수 없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동생과 나의 차이도 정확히 이것이었다.
동생은 외부 조건이 안정될 때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고,
나는 내부 감각이 정돈될 때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다.
안전의 기준이 다를 뿐,
어느 쪽도 틀리거나 미성숙한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지지 않으려 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