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남자에게 감정은 종종 약점으로 여겨진다.
느끼고, 흔들리고, 상처받는 모습은
전투와 생존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배워왔다.
그래서 남자는 감정을 숨긴다.
표정을 굳히고, 말은 줄이고, 속을 닫는다.
누가 가르친 적 없어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세상은 말한다.
“남자도 울어도 돼.”
“남자에게 강함만 요구하는 시대는 끝났어.”
하지만 남자는 안다.
그 말은 말뿐이라는 것을.
울면 약해지고,
약하면 버려지고,
버려지면 혼자 남는다.
그 공포는 오래되고, 깊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에 새겨진 문화적 흔적이다.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강해야 한다.
흔들리면 안 된다.
지지 않아야 한다.
이 역할을 지키기 위해
감정은 가장 먼저 잘려 나간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 쌓인다.
그리고 감정은
어린아이의 방식으로 되돌아온다.
울음으로 표현했을 마음이
성인이 된 후에는
침묵, 분노, 통제, 냉소로 표현된다.
치유받지 못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성숙하지 않는다.
그저 형태만 바뀐다.
생존과 전투만으로 자신을 세우면
삶은 반쪽이 된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둘은 한 인간 안에서 서로를 완성하는 두 축이다.
하지만 세상은
남성성을 힘,
여성성을 약함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여성성이 높은 남자는 외면받고,
남성성이 높은 여자는 존중받는다.
세상은 아직도
힘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그 과정에서 감정은 가장 먼저 희생된다.
나는 오래도록 감정 없이 살았다.
기쁨은 흐릿했고,
슬픔은 금세 지워졌고,
유일하게 선명했던 것은
승리의 짧은 기쁨과
숨기려 해도 터져 나오는 분노뿐이었다.
그 외의 시간들은
그저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삭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계절의 냄새를 느끼고,
작은 생명과 눈이 마주치면
미소가 스며든다.
좋아하는 차를 마시고,
조용히 걷고,
말 없는 순간 속에서
은은한 온기가 피어난다.
예전에는
이 감정들이 누군가와 함께할 때에만 존재했다.
특히 연인에게 사랑받고 이해받을 때
내 감정은 생생하게 살아났다.
관계가 끊어지면
감정도 함께 사라졌고,
나는 다시 사막으로 돌아갔다.
남자는 감정을 잃으면
그 빈자리를 여성에게서 채우려 한다.
내 상처,
내 두려움,
인정받지 못한 나의 어린 부분,
말하지 못한 울음.
그 모든 것을
그녀가 품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의존이다.
그래서 남자는 종종
자신보다 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을 찾는다.
그 앞에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남자를 더 약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여성은 연인이 아니라
엄마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때 관계는 무너진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한다.
문제는 남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 또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여성은 여성대로
억눌리지 말고, 스스로를 드러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그리고 그 기대 속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지키는 날카로움을 키웠다.
남자는 감정을 숨겼고,
여성은 감정을 방어했다.
우리는 서로가 변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느라
모양이 달라진 것이다.
존중받고 싶은 남자는 많다.
그러나 자기감정을 돌볼 줄 아는 남자는 적다.
그래서 남자는 자신에게 맞춰주는 관계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남성성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침식시킨다.
나는 남자들이 이 지점을 넘어섰으면 좋겠다.
나에게 순종적이고, 맞춰주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때로는 네게 쓴소리를 하고,
나의 마음을 함께 맞대고,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
감정을 외면하면
남성성은 곧 왜곡된다.
왜곡된 남성성은
여성성을 파괴하거나,
여성성에 매달린다.
둘 다 약함이다.
둘 다 자기 자신을 잃는 길이다.
남자는 감정을 되찾아야 한다.
감정은 약점이 아니라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누구도 대신 쥐여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