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외부 관계에서도
갈등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 충돌이 아니라,
오랫동안 경계 없이 살아온 대가였다.
남자는 늘 상대를 먼저 배려했고,
그것이 선이며 옳은 일이라 믿어왔다.
그래서 자신을 지키는 일은
생각해 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나를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고,
그 변화는 이전의 어떤 변화보다
더 거칠고 더 혼란스러웠다.
상대방을 지나치게 배려하면
겉은 평온했지만
안에서는 이유 모를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 분노는 마치
오랜 시간 억눌린 공기가 새어 나오는 듯했다.
반대로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하면
이번에는 어색함과 말하기 힘든 수치심이 뒤따랐다.
남자는 두 방향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렸다.
“배려하며 살면 미움은 피할 수 있지만,
나는 사라진다.”
“나를 지키면 살아 있는 느낌이 드는데,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까 두렵다.”
이 두 문장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충돌했다.
수치심의 정체는 곧 드러났다.
나를 지키는 순간마다
남자는 과거에 가장 혐오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자기중심적이고,
할 말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우선하는 사람들.
남자는 그런 사람들을
늘 불편해했고,
민폐라고 생각하고,
배려가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해왔다.
그들은 경계를 분명히 세웠고,
자신의 감정을 보호하며 살았다.
그러나 남자는
그 모습에서
무언가 두려운 진실을 마주했다.
알고 보니
남자는 그들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그들처럼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남자는 경계를 세우는 사람들을 피했고,
자신처럼 맞춰주는 사람들과 있을 때만
편안함을 느꼈다.
그 관계는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실은 서로의 기분을 살피느라
밖에서 지친 마음을
서로의 희생으로 버티는 구조였다.
그때의 편안함은 건강한 친밀감이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 상처받고 도망치는 사람들끼리의 연대였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과거처럼 경계 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면
차마 말하지는 못했지만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조금은 자신을 지켜야 해.”
반대로 예전에는 불편하게 여겼던
경계를 명확히 세우는 사람들을
지금은 오히려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
감정의 균형을 아는 사람처럼 보았다.
그 깨달음은 묘했고,
또 한편으로는 피할 수 없는 진실처럼 느껴졌다.
정답은 분명했다.
나를 지키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그 ‘중간 지점’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 지점은 책에 나오는 공식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었다.
직접 부딪히며 몸으로 배워야 하는 길이었다.
그래서 남자는 결심했다.
이 과정에서만큼은
조금 이기적으로 굴어보기로.
자신의 감정을 보호하고,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은 거절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을 요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소한 행동조차
남자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견을 조금만 강하게 표현해도
죄책감이 몰려왔고, 수치심이 목까지 차올랐다.
마치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남자는 알았다.
이 수치심은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나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이 과정은 느렸고, 매 순간 갈등했고,
때로는 후회와 혼란도 있었다.
하지만 그 작은 결심과 행동들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자라고 있었다.
남자는 예전보다 덜 착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훨씬 더 진실한 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남자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경계를 세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