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두려움을 마주한 이후,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해야 할 일도 같았고,
환경도 그대로였으며,
세상은 여전히 거칠었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쫓기듯 살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
마음 어딘가에서 아주 미세하게
당기던 실 하나가 풀어진 듯한 감각이었다.
그 작은 변화가
내 안의 어떤 먼지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나는 오래된 웃음을 되찾고 있었다.
어느 순간,
아주 사소한 장면에서도
불쑥 웃음이 새어 나왔다.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고,
어색할 정도로 따뜻한 웃음이었다.
내가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 낯설 정도였다.
그 웃음은
정말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기쁨의 감각이었다.
마치 오래된 먼지가
햇빛 속에서 고요히 흩어지듯
가슴 깊은 곳이 조금씩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몸도 달라지고 있었다.
남자는 평생
감정을 머리로 해결하려 했다.
생각으로 정리하면
어느 순간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감정은
머리에 있지 않았다.
감정은 몸에 저장되어 있었다.
어깨의 긴장,
턱에 남은 힘,
가슴의 막힘,
배의 무게,
숨의 깊이.
남자는 평생
이를 악물고,
어깨를 들고,
가슴을 조이며
버티며 살아왔다.
그 버팀의 흔적들은
몸에 딱딱한 갑옷처럼 붙어 있었다.
그러다 그날,
남자는 처음으로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가슴까지가 아니라,
배까지.
더 깊은 곳까지.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 단순한 동작조차
그동안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몸이 돌아오고 있었다.
몸이 돌아오자
마음도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감정은 폭발하거나 터지지 않았다.
그저
서서히 녹아내렸다.
분노는 분노가 아니었고,
그 아래에는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그 슬픔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된 순간,
나는 나에게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세상 또한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따스한 날씨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고,
길에서 마주친 강아지와 고양이들은
나도 모르게 미소를 불러왔다.
평생을 무표정으로 살아온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였다.
억누르지 않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어느 순간
또렷하게 알아차렸다.
그 변화는
내 취향과 관심사를 되찾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나는 좋아하지도 않던 관계와 일,
그리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이미지 속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다시 내가 좋아했던 것들로 돌아가 보기로.
자전거 타는 것,
동네를 걷는 것,
쇼핑하고 구경하는 것,
건담 박스를 들여다보며
한참을 고민하던 그 순간들.
어렸을 때 분명히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놓쳐버린 나의 마음들이었다.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
글쓰기.
어릴 때는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받았지만
그저 지나가는 에피소드로 치부했다.
글쓰기는
재능 있는 사람들의 영역이라 생각했고,
전공한 사람들이나 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글을 써도 의미 없고,
돈도 되지 않을 거라며
스스로 지워버렸다.
하지만 두려움을 마주한 이후,
나는 알았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서 나온 말’을
쓰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남의 기준과 재능의 잣대를 내려놓고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것,
내가 느낀 세계,
내가 살아온 감정들을
나의 언어로 남기고 싶었다.
그것이 어쩌면
진짜 나로 사는 길인지 모르겠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남자의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 맞추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삶이.
그렇게
남자는 나를 다시 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