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교육

BBC도 놀란 ‘불영어’라는 수능 영어

by 시더루츠

최근 한 기사를 보았다.

제목은 “英 BBC도 놀란 수능 ‘불영어’… 고대문자 해독 수준, 미쳤다”라는 다소 자극적인 문구였다.


기사 내용을 보니, 이번 수능 영어 문제가 유난히 악명 높았고 그중에서도 임마누엘 칸트의 사상을 다룬 34번 문제를 예로 들며 “스스로를 시험해 보고 싶다면 한번 풀어보라”는 제안을 덧붙이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문제를 보았는데, 솔직히 말해 영어 원문은 해석 자체가 쉽지 않았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글로 번역해서 직접 읽어보았다.


[34번] 다음 글의 빈칸에 들어갈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칸트는 법치를 단순히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자유를 궁극적으로 보장하는 장치로 강하게 옹호한 사상가였다. 그는 인간 사회가 점점 더 이성적인 형태로 발전하며, 구속력 있고 실효성 있는 법적 틀에 의해 규율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이러한 법적 틀만이 사람들로 하여금 조화롭게 살고, 번영하며, 협력할 수 있게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에 대한 믿음은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인 평가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관점은 홉스의 사상과 유사하다. 즉, 인간은 폭력적이고 갈등을 일으키는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지속적인 법적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자비심이나 선의에 기대할 수 없으며, 심지어 ‘악마들로 이루어진 국가’라 하더라도 모든 시민을 동등하게 구속하는 법 체계 안에서는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이상적으로 볼 때, 법이란 모든 이성적 존재들이 자유롭게 선택했을 정치적 원칙들을 구현한 것이다. 만약 그러한 법이, 사람들이 애초에 이성적으로도 선택하지 않았을 행동을 금지하는 것이라면, 그 법은 인간의 자유를 ( ) 수 없다.


① 인간의 자유를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여겨질

② 정의로운 제도를 강력히 옹호하는 것으로 평가될

③ 인간의 자유에 대한 제약으로 이해될

④ 인간의 악한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효과적으로 집행될

⑤ 이상적인 법적 체계를 전제로 받아들여질


정답은 ③번 인간의 자유에 대한 제약으로 이해될 수 없다였다.


한글로 읽어도 솔직히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이 글의 논지를 따라가려면 단순한 독해를 넘어 철학적 전제와 사고의 흐름을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실제 시험장에서 마주했을 학생들을 떠올리니 그 참담함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간다.


이 문제를 보며 자연스럽게 과거, 내가 편입을 준비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하루 종일 알지도 못하는 단어를 외웠다. 독해 지문이 워낙 의학이나 경제 같은 전문 분야 위주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단어들이 있다. hypertension (고혈압), varicella (수두) 같은 것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분명히 넘지 못하는 벽이 존재했다. 그건 단어의 문제가 아니라, 한글로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문제들이었다. 해답을 봐도 “왜 이 답이 맞는지” 납득되지 않는 문제들이 수두룩했고,

그때 느꼈던 무력감이 이번 수능 문제를 보며 다시 떠올랐다. 시험을 위한 시험이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요즘 학원 강사들이 공부의 중요성이나 입시 성공을 유독 강조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러나 그것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라기보다 입시에 대한 집단적 흥분, 즉 입시열에 더 가까워 보인다. 물론 그들 역시 생계가 걸린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 정도의 문제의식만을 반복하는 현실은 씁쓸하다. 정량화하기 어렵고 측정하기 힘들다는 이유, 혹은 갖다 붙이기 나름인 여러 현실적인 이유들로 인해 서로 배려하며 토론하고, 말하기, 표현하기, 자기감정 알아차리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와 같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알아가고 헤아려 주는 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똑똑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그 좋은 두뇌와 에너지가 자기 삶을 탐구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는 데 쓰인다면 순수과학, IT, 인류학, 심리학 같은 분야에서도 훨씬 더 고른 인재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아이들을 지나치게 암기하게 만들고, 지문이나 내용을 해체하고, 분별하고, 답을 찾으며 이성과 논리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몰아간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점점 냉철해지고, 차가워진다.

아이들이 점점 개인주의적으로, 감정 없이 경쟁과 승패만을 따지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방식은 한국의 정서와도 잘 맞지 않는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조상들 중, 혹은 동양 문화권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서양 철학자처럼 말하고 사고하던 사람은 드물다. 물론 서양의 사고방식도 필요함은 인지하고 있다.


우리의 교육은 자연 현상이나 가치들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하나에서 전체를 관찰하며, 마음과 삶을 함께 탐구해 왔다. 그렇게 좋은 전통과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살릴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시험과 점수만을 붙들고 있는 현실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 내가 여유가 생기고, 돈을 벌 수 있게 된다면 적어도 다른 방향의 교육에는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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