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은 부딪히면서 알아간다.

간섭과 개입 사이 그 어딘가에서..

by 시더루츠

서점에서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제목은 렛뎀이론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간섭하거나 통제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의 생각과 행동 감정에 집중하여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것이라고 한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는 이해했으나 책 내용이 너무 감정적이고, 모든 것을 다 내버려 두라 건지, 혹은 적절히 간섭해야 하는지 방향이 서지 않은 느낌이었다. 저자는 그저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집중할 것만 추천했다.


렛뎀이론이 말한 것처럼 자녀 교육에서는 스스로 하게끔 내버려 두어야 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의존성을 낮추고 독립성을 키우기 위함이다. 다만 여기서 자녀들이 방치되었다고 느끼지 않아야 하고, 부모님은 꾸준하게 관심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녀가 도움을 요청하면 부모는 얼른 개입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교과서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나 실제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하다. 모든 것을 내버려 둘 수도, 모든 것에 간섭을 할 수도 없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부딪히면서 조율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조금 정리를 한다면 간섭과 개입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서 간섭이 될 수도, 개입이 될 수도 있다. 듣는 사람이 불쾌감을 느꼈다면 그것은 간섭이 되고,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면 개입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간섭의 전제는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100% 라는 것이다. 그들은 고의로 간섭한다거나 방해하려고 한 적이 없을 것이다. 다만 상대방은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정말로 그 사람을 위한 것인지, 혹은 나를 위한 것인지도 엄격하게 점검해야 된다. 관계는 기본적으로 서로의 인격체를 존중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본다. 그 틀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서로의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어느 정도는 유하게 넘어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개입 혹은 간섭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나치다고 느끼거나, 불쾌할 수가 있다. 여기에는 말투나 억양도 한몫을 할 텐데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부드럽고, 의중을 묻는 듯한 질문은 아무래도 좀 괜찮을 것이다. 그것은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들도 혼란스러울 수 있다. 어떤 것은 개입이고, 어떤 것은 간섭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간섭이고, 내가 필요할 때 오는 조언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다. 이 부분에서도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좀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리고 내버려 두는 것이 상대방에 대해 침범하는 것을 멈추게 하기도 하지만, 의존을 막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 그때에는 일부러 방치함으로써 상대방이 스스로 하게끔 기다려주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다.(부모님들한테 가장 필요하면서, 또한 가장 힘든 일이라고 생각된다.)


결국 간섭-개입-방치는 어떤 관계에서건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부분이다. 우리는 서로 안다고 생각해도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늘 있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 답은 결국 부딪히면서 조율해 나가는 과정 중에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하면서 성숙하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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