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가 궁금해졌다.
최근에 읽었던 『도파민네이션』의 영향인지, 아니면 단순히 타이밍이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스스로 정하지 못한 채 끌려가던 자극적이고 탐욕적인 중독들을 하나둘 내려두고 있다.
도파민을 과도하게 분비시키는 쾌락들은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무게만큼의 공허함과 죄책감, 상실감으로 다시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과거에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나 죄책감, 수치심 때문에 그것들을 멈추려 했지만 그럴수록 욕망은 더 큰 형태로 부풀어 나를 집어삼키곤 했다.
『도파민네이션』의 저자는 최소 4주는 절제해야 뇌가 적응하고, 그 사이에 욕망을 해소하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는 조금 다른 마음을 먹었다. 예전에는 ‘안 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그저 선을 유지하기로 했다.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한 발짝 물러나 그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쪽에 가깝다.
마음이 ‘하고 싶은 쪽’으로 기울어지는 바로 그 찰나에만 아주 순간적으로 멈춰 선다. 그렇다고 그것을 도덕적이거나 악한 것으로 규정하지도 않고, 서서히 놓아준다.
흥미로운 점은 ‘참아야지’라고 외치는 순간 참지 못하는 무언가가 느껴지고, ‘참지 말아야지’라고 외치는 순간
오히려 참아야 할 무엇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담배를 예로 들자면 무조건적인 금연이 아니라, 금연하고 싶은 나의 마음도 헤아리면서 동시에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 역시 함께 들어주는 방식에 가깝다. 묘하게도 이런 태도는 충동성을 줄여주고, 처음 담배를 끊고 싶다고 느꼈던 초심의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나는 도덕군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욕망에 끌려다니는 것도 아니다. 쾌락을 끊으려는 것도 아니고, 쫓으려는 것도 아니다.
과거에는 머리에 있는 이성과 마음에 있는 양심으로만 욕망과 중독을 억눌렀다. 그래서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그 욕망에 끌려가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 머리와 마음에 씌워두었던 엄격한 도덕적 잣대와 강한 양심을 조금 내려놓고, 대신 몸의 이야기를 더 잘 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새로운 마음가짐, 혹은 목표 같은 것이 생겼다. 그것은 ‘나’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감각이다. 이것은 욕망에 끌려가고 중독에 빠진 '나'보다 더 나은 모습일 것이라 결정하거나 규정하려는 마음은 아니다. 그 또한 나의 하나의 모습이다.
다만 나는 '나'의 다른 모습에 대해 설렘이나 기대를 느끼고 있다. 이 감각은 단순히 도덕적이거나 양심적인 언어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몸의 표현 또한 이 안에 함께 담겨 있다. 며칠이 지나며 금단 증상도 함께 겪고 있다.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공허해지거나 외로워지기도 한다. 저절로 회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다. 그러다가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면 이상하게도 서서히 멈추고 알아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때 이 감정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감정들이 있는 그대로 감당되고 있다.
그래서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만 완전히 무의미해지지는 않는다.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더 큰 내가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는 느낌이 있다. 그것은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조금 넘어서 있는 무언가다. 그 무언가는 마치 내가 골고루 경험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 안의 세계들 가운데 쾌락의 섬에 자주 들렀다면, 지금은 그 섬 대신 다른 미지의 영역으로 나를 이끌고 있는 것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혼자 거리를 걸을 때 나도 모르게 나오는 이상한 소리나 미세한 몸짓들이 있다. 타인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아주 사소한 움직임들이다. 그 안에는 나의 존재감과 형언할 수 없는 소소한 기쁨이 담겨 있다. 돌이켜 관찰해 보면 그것은 존재로서의 기쁨, 마음의 작용으로서의 기쁨, 움직임으로서의 기쁨이 함께 얽혀 있는 상태에 가깝다. 그 세계는 작고, 조용히 소중하다. 확대해서 느껴보면 진한 여운과 감동이 있다.
어쩌면 쾌락으로 소모되던 도파민들이 지금은 꼭 필요한 곳으로 아주 사소하게 배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큰 자극이나 큰 고통에만 반응하던 나의 감각들이 이제는 작은 감동과 작은 친절에도 잔잔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매일 듣던 재즈 음악이 어느 날 문득 조금 더 포근하고 부드럽게 나를 감싸 안아 주는 것처럼.